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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이성선시인추모글모음-최재도]별이 되어 하늘에 묻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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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95회 작성일 05-04-0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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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내 너무 하늘을 쳐
다보아/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별아, 어찌하랴/이 세상 무엇을 쳐다
보리//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
목에서//바라보면 너 눈물같은 빛남/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별을 보며>

단언하건데, 별을 향해 소원을 빌면 그건 반드시 이루어진다. 다만 조금
늦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별은 천상 저 멀리 있고, 우리는 하염없이 낮
은 지상 이곳에 머물러 있다. 그 먼 별까지 우리의 기도가 전해지려면, 그
리고 그것이 응답되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마을의 어느 시인도 매일 밤마다 별을 향해 중얼거리곤 했다. 지
나치게 많이 쳐다본 탓에‘별이 더럽혀지지 않을까’걱정할 정도였다. 그
는 별을 쳐다보며‘가슴 어지러움을 황홀하게 헹구어 냈다’한다. 그러면
서 소원을 빌었는데, 그의 소원은 별 그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몸은 지상에 묶여도/마음은 하늘에 살아야지/이 가지 저 가지를 헤매며/
바람으로 울어도/영혼은 저 하늘에 별로 피어야지/절망으로 울던 마음 그
가난도/찬연한 아픔으로 천상에 빛나야지. <몸은 지상에 묶여도>

하지만 그의 몸은 지상에 묶여 있고, 그렇기에 별이 되겠다는 소망은
대단히 무모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이 땅에 머무는 동안‘나무’가 되
기로 했다. 뿌리는 땅에 묶여 있지만 가지는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나무처럼 시인은 그렇게 마음과 영혼을 먼저 하늘로 보냈다. 그
리하여 그는 하늘과 땅의 소식을 주고받는 안테나이자, 별과 바람의 소리
를 전하는‘악기’가 되었다.

나무 곁에서 별을 바라보면/내 몸에서 소리가 난다/하늘의 물방울 음악
이 들린다./∼ 나무 아래에서 샘물을 마시면/내 영혼에 날개가 돋아난다/
나는 이미 하늘의 악기가 된다/ ∼강물로 별을 목욕시키며/소름끼치는 물
방울 향기 튕기어/가난한 날개를 씻는다./<별을 지켜선 밤>

그는 밤마다 별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시(詩)로 만들어 전했는데, 그
대신 하늘의 이야기를 밤새 들어주어야만 했다. 대체로 하늘은 지상의 아
픈 일들만 들려주곤 했기에, 그의 새벽은 늘 눈동자가 젖어 있었다.

등잔 앞에서/하늘의 목소리를 듣는다//누가 하늘까지/아픈 지상의 일을
시로 옮겨/새벽 눈동자를 젖게 하는가.<빈 산이 젖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건 시인 자신이 보낸 것이었다. 우리 중 하늘과 교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는 오직 그뿐이다. 평소 그는‘병 하나는 지니고
살아야 아름답다’(牛黃)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하늘을 걸어가는 사람이고, 지상에 아픔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하
늘에 꽃을 바치는 사람’(풀잎의 노래)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는 낮이면
하늘에 꽃을 바쳤고 밤이면 그 하늘을 걸어다녔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설악산을 지붕’으로, ‘동해를 마당’으로 삼았으며, ‘붉고
싱싱한 햇덩이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숯불에 구워 아침상’(나의 집1)
에 올리곤 했었다. 그가 한 밤 촛불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를‘산 아래 붓꽃 한 자루’(붓꽃)라 표현했고, 그와 함께 차를 마시고
돌아나온 사람들은 그가‘찻잔에 산을 띄워 달여 마시더라’(山茶)고 전
하곤 했었다.
그는 이렇듯 일찍부터 영혼을 하늘로 보내고 몸만 지상에 머물러 있었
건만, 그마저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몸을 묶고 있는
이 밧줄로부터 해방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모양이다.

지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나는 불이 되리 하늘의 불이 되리/세상의
온갖 밧줄에 묶이어 살아온 나를/죽어서도 끝내 굵은 밧줄로 다시 묶어/땅
속에 버려둘 수는 없어/하늘로 가는 아궁이에/장작처럼 누워/온 몸에 불을
댕겨/어두운 땅 한번 환하게 빛내고/하늘로 가리/불이 되어 불이 되어 하
늘로 가리.(불타는 영혼의 노래)

햇살이 유난히 화창하던 5월 어느 날, 느닷없이 그의 육신은 재가 되
어 설악에 뿌려졌고, 그의 영혼은 불이 되어 하늘로 돌아갔다. 그가 한평
생‘하늘문을 두드리며’살아왔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소원을 이루었다. 아마도 그건 그가 평생동안‘별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기’때문일 것이다.

내가 죽으면/동트는 하늘로 덮어주세요/열광하는 그 빛으로 덮어주세
요/∼가슴에는 오직 별이 있어요/가슴에만 뜨는 별이 있어요/별과 함께 나
를 묻어주세요/그리고 오래 기다리세요/동트는 하늘을 보며.<동트는 하늘
을보며>

별과 함께 하늘에 묻힌 시인 이성선. 동트는 하늘에서 마지막 순간까
지 빛을 잃지 않는 별이 있다면 아마도 그게 이성선일 것이다. 별이 좀 더
럽혀지는 한이 있더라도 앞으로 자주 하늘을 바라볼 일이다. 그의 별은,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춰주는’(사랑하는 별 하나) 그런 별
이기에, 누구라도 어둔 밤 고개만 약간 치켜들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
을 것이다. 만약 그 별을 찾아낸다면 이렇게 물어볼 일이다. …우리 또한
세월이 흐르면 당신의 그 별에 다다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