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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이성선시인추모글모음-박명자]목관악기 울리시며 혼자 떠나시는 님의 앞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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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23회 작성일 05-04-0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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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긴 목마름으로 숨차게 달려오신 님의 발자국
그 삶 그 뒤안길 분향 속에 아득히 뒤돌아보면
시인의 병풍 뒤로 흰 꽃잎 분분히 눈물 지네요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지 않은 조선중엽의 달빛이듯
언제나 님의 노래는 은은한 향내
구구 절절 님의 시는 풀벌레의 두루마리 긴 긴 사연
님께서 어느날 푸른 그늘에 비스듬히 비파를 울리실적에
멈춤 없이 부풀어오르던 신비의 노래…
언제나 깨어있는 촉수로 맑은 감성의 입김을 주셨지요.
그러나 오늘 님께서는 모호하던 삶을 한 장 음반처럼
깨뜨리시고 흰 도포를 입으셨네요.
인연의 실타래 풀며 풀며 후미진 극락정토
목관악기 울리시며 혼자 떠나시다니…
님이 떠나시는 길목 생의 마지막 오늘 아침
신록은 어찌 이처럼 곱습니까?
저 호수에 내리는 금싸라기 햇살 어쩌면 저처럼 빛부십니까?

이성선 선생님!
이 지방 이 강산 곳곳에 시의 금자탑 찬란히 세우시더니
오늘 빈손으로 이렇게 떠나시렵니까?
그러나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우정도
끝났나 봅니다
세상번뇌 인연의 명주실 꾸리 뒤로하시고
강 건너 강 건너 나룻배에 실리듯 아슬아슬 떠나십니다
다만 남은 우리는 님의 옷자락 부여잡지 못하고
영전에 시든 꽃 한 송이를 바칠 뿐입니다
세상 연민 모두 내려놓으시고 이제 영면하십시오
이성선 선생님!
바람의 길. 구름의 길. 선생님께서 꿈꾸던 시의 길
부디 편안히 가십시오
선생님이 그려 놓은 이상의 동산에서
부디 자유를 마음껏 날개짓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