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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2001년 [이성선시인추모글모음-박명자]티끌 세상을 조용히 건너간 음유시인 이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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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082회 작성일 05-04-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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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5월 4일 오전11시. 우리 문우 이성선 시인은 마치 하나의 꽃
잎 지듯 가만히 저 세상으로 건너가 버렸다.
아름다운 5월 아침 새 잎이 햇살에 더욱 빛부신 그 날 이 시인은 이승
의 언덕에 풀잎 하나 상채기 내지않고 조용히 건너가 버렸다.
그 날 속초 교동 자택에서 사모님 최영숙여사가 목욕 간 시간 혼자 자
는 듯 영원히 눈을 감았다. 올해 회갑나이에 유족들에게 한마디 유언도
없이 책상위 새 시집 출간할 원고를 고스란히 펴 두고 가벼운 산책 가듯
저 세상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상한 것은 근간에 이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였든지 가끔 존재
론적 사고를 열어 보이며 죽음의 그림자를 시 속에 형상화하기도 하였다.
또한 죽음의 골짜기를 밤마다 기웃거렸는지 새벽이면 식은 땀을 흘리며
맥없이 자리에 일어 나기도 하였다 한다.
최근 인도 여행에서 돌아 온 이후 그는 마치 철학하는 사람처럼 무시로
죽음을 화제에 올리며 죽음과 삶의 경계를 무시로 드나드는 듯 하였다. 나
죽으면 화장하여 백담 계곡에 뿌려다오. 침묵의 유언을 평소 가족들에게
남겼다한다. 또한 그의 작품 속에서도 우주가 내 몸에 손을 얹었다. 는 등
우주론을 펴 보인 것도 이상한 일이다. 또한 측근 이야기를 들으면 이 시
인이 서재에 혼자 촛불 한자루 밝히고 기도하는 자세로 긴 밤을 보내기도
하였다한다. 평소 이 시인 성격은 문명의 거센 파도를 저만치 비켜 서서
외 길을 걷는 고집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요즘 대중 문화 혹은 문명의
첨단 다원화 세태는 저만치 강건너 불 보듯 하며 항상 옛시인처럼 혼자 운
동화신고 타박타박 산길을 걸으며 곤충. 나무 사랑을 실천하였다 한다. 언
이성선시인추모글모음
티끌 세상을 조용히 건너간
음유시인 이성선
박 명 자
이성선 시인 추모 글 모음 27
제나 우주 대 질서 앞에 숙연히 옷자락 여미며 무소유가 곧 삶의 지혜라고
생각하며 산업화세태 물질문명과는 타협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흔
한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가용등을 소유하지 않았다.
칼날같은 예지의 불을 켜고 세상을 외길로 고독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그는 어떤 소유의 개념에서 늘 자유롭고자 하였다. 우주 광활한 자연의
질서 속에 몸을 줄이고 한잎 꽃잎처럼 가볍게 흐르고자 하였다.
일상의 소유물이 우리를 소유해 버리므로 진작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
다는 이론을 한결같이 펴 보이며 무한 자유의 날개짓을 늘 꿈꾸어 왔다.
아득히 거슬러 오르면 이시인은 고성군 토성면 성대리 지주의 아들로 태
어나 속초고등학교, 고려대학 농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계속 중학교 교직
에 몸담으며 내면 깊은 허무의 굴헝에서 시를 계속 퍼 올렸다.
70년 문화비평. 72년 시문학을 통하여 문단 등단 후 계속 주옥같은 시
를 쓰며 중앙 문단에 눈길을 끌었다.
그리하여 (우주가 내 몸에 손을 얹었다)등 13권의 시집을 상재하였으
며 작품세계는 강원도 서정을 자기만의 독특한 테크닉으로 노래하였다.
또한 자기 세계를 확보하여 중앙문단에 인정을 받아 90년 한국 시협상.
94년 정지용 문학상, 96년 시와 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시의 세계는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감각적 지성적 작품과는 차원이 다른 직관의 세계
를 외따로 갖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시의 광맥하나 지닌 듯 무궁한 시를 계속 퍼 올렸다. 이
시인은 창작 활동 이외에도 물소리 시낭송회를 100회이상 지방에서 운영
하며 지역사회 문학의 저변 확대에 이바지하였다.
또한 속초 환경운동연합 운동 의장직을 맡아 자신의 시 세계와 가까운
자연 사랑의 길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30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나 잠시 원주 토지 문화관 관장직을
지내며 서울 숭실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주2회 출강 하는 등 약한 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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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가한 것이 급한 사망의 원인이 된 것 같다. 지난 5월 5일 속초 의
료원 영안실 빈소에는 서울 이반 교수 및 그의 제자 지방 문인 유가족, 환
경운동연합회원 동료 교직원, 이웃들 모두 100여명 조문객이 모여 추모
모임을 가진바 있다.
그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백담 계곡에 뿌렸다. 백담사 마지
막 길에는 아끼는 서울 문인 100여명이 버스 한 대로 참가하여 이 시인의
인간과 문학을 추모하였다.
그리하여 이성선 시인은 그의 시에서처럼 마치 한 마리 새가 되어 이
나무 가지에서 저 나무 가지로 자리를 옮겨앉듯이 가볍게 이승과의 인연
을 끊었다.
이제 그의 우주 무한 시공 속으로 바람처럼 조용히 스미어 버렸다. 남
은 우리는 이제 그의 모습 또는 전화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이
제 그는 한 마리 새처럼 영원속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