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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소설-윤홍렬]逆風은 불어도 江물은 흐른다.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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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6,068회 작성일 05-04-0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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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에서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줄줄 흐르는 말복머리의 더
위다. 이런 더위속에 고문을, 아주 모진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은 추측만 해도 끔찍한 정경이다. 아마 때
리는 사람의 고역도 수월치는 않을 것이다. 몽둥이 또는 검도용 죽도
를 바꿔 들어가며 여선규를 장작뻐개 듯이 두들겨 패는 지천만도 이
찌는 듯한 더위의 장막을 걷어내지는 못하나보다. 그의 몸에 걸쳐져
있는 모든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그러면서도 여선규를 패는 매
의 손길은 늦추지 않았다. 지천만의 모진 매의 고통이 하도 심하여
취조실 바닥을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면서도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
아내는 여선규는 절대로 외마디소리는 지르지 않는다. 몸이 으스러
지는 듯한 매를 맞으면서 문득문득 본능적으로 외마디소리가 터져
나올 듯 하였지만 그럴쑤록에 이를 악물고 몸부림을 치면서 참았다.
외마디소리를 지르는 것이 지천만의 몽둥이질에 굴복을 뜻하며 그에
게 관용을 호소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까봐 기를 쓰며 참는 것이다.
이리 저리 뒹구르는 여선규를 이 쪽 저 쪽 골라가며 몽둥이질을 하는
지천만은“얼피덩 댑세”를 연발 했다. 김남철이 있는 곳을 대 주기만
하면 매를 그치겠다는 것이었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는 노릇

<5>
이다.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드라도 매값에 김남철을 팔아 넘길 수는
없다. 하도 매가 독하니 한 순간에는 거짓말로 아무곳이나 둘러 댈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 결과의 보복이 두렵기도 하려니와
될 수 있으면 거짓말을 하지않고 살아 가겠다는 평소의 생활자세를
꺾기도 싫었다.
지천만은 혹독한 매질과 끈질긴 유혹과 협박을 엇바꿔 가며 여선규
를 다루고 있는 데에“모른다”라는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것 또한
평소의 신념대로이다, 섣불리 정직하게 입을 열었다가는 김남철이 당
하는 결과가 너무 참혹할 것이기 때문인 데“억울하게 위협 받는 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라는 소
신의 실천이다. 지금도 그렇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발로 차면 차는
대로 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결과로“나의 육체”는 으스러
질런지 모르지만“나의 마음은”절대로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자부심을 갖는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
을 겪고는 있지만 마음은 괴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한동안 가쁜 숨으로 헐떡거리며 몽둥이를 휘두르던 지천만이 매를
그친다. 물론 여선규를 위하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줄줄 흐르는 땀을
주체하기도 어렵고 숨도 가빠지고 해서인 것 같다. 그는 죽도를 취조
실의 우측 구석에 세워놓고 의자의 등받이에 걸려 있는 수목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 그리고 가슴패기의 땀을 문지르며 여선규에게 다가온
다.
“일어나기오”
“……………”
지천만의 지시는 들었지만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다.
온몸이 아프고 결리고 쑤신다. 그러나 그의 지시를 어긴다는 것은 자
칫 혹독한 매질을 불러오게 될런지도 모르기 때문에 어떡하든지 일어
나 보려고 꿈틀거려 보았지만 도저히 안되겠다. 여선규는 다시 다리
를 오그리고 말았다.
“내가 도바 줄 것입매. 일어나봅세”
지천만이 여선규의 상체를 거칠게 들어 의자 앞으로 질질끌고 갔
다. 이어 여선규의 등뒤에서 그의 겨드랑밑으로 두 손을 넣어 번쩍들

어 의자에 앉혔다. 이어 능숙한 솜씨로 그의 두 팔을 의자의 등받이
뒤로 돌려 거기에 결박 하였다. 그리고 여선규의 체중이 책상쪽으로
쏠리도록 의자를 조금 움직여 놓고 여선규의 머리를 책상머리에 의지
가 되도록 지긋이 눌렀다. 여선규는 지천만의 손길에 반항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래서 그가 누르는 대로 책상머리에 머리를 얹은
채로 눈을 감았다.
연신 얼굴과 목덜미 가슴패기의 땀을 문지르며 여선규 옆에 잠깐
멈칫거리던 지천만이 밖으로 나가는 것 같다. 멀어지는 그의 발소리
를 들으며 여선규는 기진상태에서 슬며시 잠결로 넘어 갔다. 이어 어
수선한 꿈을 꾸다가 인기척에 슬며시 눈을 뜨는 데 눈두덩이 부었는
지 눈꺼플이 부드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머리가 한결 개운
해진 것 같다.
지천만이 돌아 왔다. 여선규는 우선 고개를 조금 흔들어 얼굴을 뒤
덮고 있는 파리떼들을 물리치려고 했다. 그런 데 모질은 매에 시달린
몸이니 목인들 제대로 힘있게 흔들릴 리도 없다. 그저 파리떼들이 조
금 위치를 바꾸는 정도의 반응이 있을 정도다.
땀국이 뚝뚝 떨어지다시피하는 반소매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갔던
지천만이 옷을 갈아 입었나보다. 부숭부숭한 반소매 와이셔츠 차림에
젖은 수목 수건을 손목에 걸고, 얼굴에는 땀이 걷힌 후련한 표정이다.
점심인지 간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뭘 먹은 것 같다. 뱃속이 느긋한 윤
기가 그의 얼굴에 번드르르 하게 흐른다. 여선규는 새삼스레 침을 꿀
꺽 삼키는 데 뱃속에서는 또 무두질을 시작한다
오늘 이 방에서 세 번째 나갔다 들어오는 지천만. 어디를 다녀 오는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경찰서 뒤뜰 우물가에 있는
직원용 목욕간에 가서 목물을 하고, 사찰계 사무실에도 들러 잠시 쑥
덕거리고 오는 것이리라는 정도로 추측을 한다. 여선규에게 있어서
그가 도저이 반가운 대상은 아니지만 상당히 기다려지던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땀과 먼지로 그리고 피로 얼룩진 얼굴에 떼거리로 꼬여드
는 파리떼를 손쉽게 쫓아 버리기 위해서는 결박된 손이 풀여나야 하
기 때문이다. 그리고“혹시나”하는 하나의 기대감도 있어서다.
지천만은 뚜벅뚜벅 다가와 여선규의 오라를 풀었다. 여선규는 우선

급한대로 두 손을 활짝펴서 얼굴을 문질러 파리떼를 섬멸하려고 하였
는 데 하도 많은 매를 맞은 몸이라 아프고 결려 손이 민첩하게 움직여
지지 않았다. 그래도 결박을 당했을 때보다는 한결 빠른 기동성과 효
율적인 동작으로 파리떼를 물리칠 수가 있다. 그렇다고 파리떼가 멀
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집단적으로 몰려드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
에 파리들에게 당하는 시달림은 한결 느슨해졌다.
가족들의 안부도 시간의 흐름도 전연 알 수 없는 이 꽉막힌 상황에
서, 지천만이 나가면 나가는 대로 또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여선규
신상에, 파리떼를 쫓는 편의 정도 말고 좀더 근본적인 변화가 있지 않
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을 가져보곤 했다. 지금도, 오전에 이
방으로 옮겨와서 세 번째로 나갔다 돌아오는 지천만에게서, 뭔가 구
두로 전해지는 소식이 있기를 은근히 바랐는 데, 달다쓰다 말은 한마
디도 없이 오라줄 풀어주는 것이 고작이다. 지천만이 나갔다 들어오
는 횟수는 여선규에게 혹독한 고문을 한 횟수와 같은 것인데, 아무런
죄도없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시피할 정도로
두들겨 놓고, 세 번씩이나 들랑거리면서도 전해주는 소식 한 마디 없
이, 젖은 수건만 벽에 걸어 놓고 제자리에 털석 주저않는다. 이제부터
는 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지천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하기야 지천만은 여선규를 두들겨 패면 된다. 그리고 김남철과 엊저
녁에 술을 마셨느냐와 그리고 김남철이 지금 어디에 있을 것으로 짐
작하느냐를 또 물으면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직분이고 책임 수
행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선규의 대답은 한결같이 모른다로
일관할 수 밖에 없다. 엊저녁에 함께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밝히면 김
남철의 이동범위를 경찰은 금방 파악할 것이다. 김남철은 잡히면 크
게 당할텐데, 그런 사실을 말 할 수는 없다. 지금 어디 있다고 생각하
느냐는 문제도 그렇다. 그 것은 김남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사안이
다. “당신들이 모르는 것처럼 나도 모르는 것이 사실일 수 밖에 없지
않은 가.”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지천만의 말문이 막
히면“이 갈라 새끼 말이 많습메”라고 냉소 어린 말 한 마디와 함께
몽둥이를 휘두르면 그의 직책은 유감 없이 진행 되는 것이다. 물론 김
남철의 행방에 관하여 여선규가 그렇듯 깜깜한 것은 아니다. 그의 가

족들이, 김남철의 아내를 포함하여 모두 공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곳이 딱 한군데 있기는 있다. 틀림없이“거기”에 가 있을 것이다.
여선규네 뱃소에서 두만강 건너 이십 리 쯤 되는 북녘 땅, 만주의
리운골(麗雲鄕)이라는 곳이다. 여선규네가, 그의 증조부대, 그러니까
청나라(淸國) 말기부터 이른바 도강영농(渡江營農)을 시작하였는 데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설립된 후에도 그 지방 관리들을 적당히
구슬려 계속 경작을 하다가 만주제국이 들어선 오늘날에도 변함 없이
경작을 해오는 논이 약 일천 평 정도 있다. 거기서 나오는 쌀이 약 열
가마 안팎. 화전민의 추수로서는, 아니 무산읍 장거리에서 장사를 하
는 사람의 처지에서도 쌀 열 가마 안팎이라면 듣는 사람의 입이 딱 벌
어질 정도로 놀라운 수확량이다.
본래 어른 손바닥 크기만 하다고 비유되는 비탈진밭 몇 뙈기 가지
고서는 온가족이 입에 풀칠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화전민들의 가련한
소망이 채워지기 어렵다. 그들이 아무리 부지런하게 노력을 한다 해
도 노력하는 정도에 비하여 수확량은 너무나 적다. 그나마도 쌀은 한
톨도 없고 감자 옥수수 기장 콩 등의 잡곡들이 조금 조금씩일 뿐, 어
느 것 하나 푸짐하게 걷어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두 동
원 되어 온갖 정력을 기울여 부족한 식량을 채우고 싶어도 온갖 정력
을 기울일만한 일거리가 없다. 해가 지면 반드시 별이 나타나는 것 처
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춘궁기라는 쓰라린 고비를 어김없이 겪어
야한다. 가족마다 아니 화전민들 대부분이 매년 봄철마다 누우렇게
부은 얼굴, 허기에 찌들어 구부러지는 허리, 그래도 굶어죽지는 말아
야겠어서, 온 가족이 이를 악물고, 인근 계곡을 휘더듬어 산나물과 약
초 채취에 매달린다. 그렇지만 산나물을 뜯는다해도 가계에 변변한
보탬은 되지 않는다. 무산주변 전체가 산악지대이니, 누구나 조금만
움직이면 뜯을 수 있는 것이 산나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나물을 사
먹을 사람도 많지 않으려니와 값도 생활비에 별로 보탬이 되는 정도
가 아니다. 청진에 가지고 가면 비교적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지만
아무리 좋은 값을 받는다기로소니 왕복 오백 리 길의 여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약초의 종류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산채보
다는 손쉽게 팔리기도 하고 값도 나물값보다는 더 받는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 실제로 더 받아본 경험은 별로 없다. 중간상인들의 농간 때
문이다. 그러니 좀처럼해서 값을 제대로 받기도 어려우려니와 더러는
외상으로 가져간 약초값을 아주 못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화전민
들은 뼈가 빠질정도로 수고는 하면서도 뱃속은 항상 허기진 상태다.
샛강골 일대의 화전민들이 겪어내는 그렇듯 비참한 생활수준에서
오로지 여선규네만은 춘궁기를 모른다. 춘궁기를 모르는 정도가 아니
라 이웃 화전민의 집에 산기가 임박한 임신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미역 몇 오리와 첫국밥용으로 쌀을 반말정도 갖다주기도
한다, 아이들을 보통학교에 보내고 있는 집도 여선규네 뿐이며, 지금
사는 집도 톱질과 대패질을 제대로 하여 다듬은 재목으로 사귀를 번
듯하게 맞춰 지은집이다. 부엌의 부뚜막을 양회로 싸바른 집이기도
하며 방바닥엔 다른 화전민의 집이나 마찬가지로 삿자리를 깔았지만
벽지와 반자지는 지물포에서 사다 발랐다. 제삿상에 쌀로 지은 메를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가정이 여선규네다. 이래서 샛강골 일대에서 생
활능력에 여유가 있는 집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집이 여선규네 집인
데 그러한 여유의 원천이 리운골에서 걷어들이는 쌀농사의 덕이라는
것을 화전민들 세계에서 뿐만이 아니고 무산읍 일대에서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무산읍 사무소에서도 알고 있으니, 아마 경찰서
에서도 알 것이다.
샛강골 주변에 있는 비탈밭들은 주로 여선규의 부모님들이 가꾸지
만 리운골의 논농사는 여선규 부부가 전담 한다. 일요일이나 방학때
에는 아이들도 못논의 제초작업 또는 눈두렁접기등의 작업을 했고,
김남철도 봄철과 가을 철의 농번기에는 틈이 나는 대로 리운골에 가
서 논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래서 리운골 논 옆에 사는 만주인 펑장롱
(彭江龍)씨네 하고의 친분은 여선규네 가족들이나 김남철이나 비슷
한 처지다. 그런 데다가 펑 씨도 술 좋아하기를 김남철에 뒤지지 않는
데다가 나이도 여선규와 동갑이기 때문에 더욱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
는지도 모른다. 마땅한 안주, 마땅한 안주라야 두부나 산채가 고작이
지만 어쩌다가 펑 씨네집에서는 돼지고기 튀긴 것이 나올 적이 있기
도하다. 그런 안주가 장만되고 술이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무산
에서든 리운골에서든 그들은 기별을 주고 받아 여선규와 어울려 세

사람이 함께 마시는 것으로써 즐거워하는 사이다. 또한 만주인들이나
조선인들이나, 속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끼리 어울리기만하면,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나서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도마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난도질을 치는 것으로써 통쾌한 속풀이를 삼는 시절이다. 이 세 사람
은 술을 마시는 기회이든 오랜만에 만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이든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본군의 연전연패 소식과 더
불어 곧 망할 것이라는 저주로 이어지며 일본인들을 비난하고 헐뜯고
응징하는 말을 기탄없이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사이다. 이런 행위
가 만일 경찰이나 헌병대에 알려지는 날이면 혹독한 고문 끝에 생명
을 잃을 수도 있고, 운이 좋아야 올바른 재판도 받아보지 못하고 무한
정 형무소에 쳐 박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도가 가볍다고 판단되
는 경우라 할지라도 거의 불구덩이나 다름없는 곳에 징용 또는 군인
으로 몰려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본을 헐뜯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짓이건만도, 절대로 비밀이 보장될 것으로 굳게
믿는, 어떤 비밀조직의 동지와도 같은, 무언의 약속이 맺어진 것과도
같은, 인간다운 사이인 것이다.
일본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김남철이 지금 숨어 있을 수 있는 곳으
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곳이 창렬동일 수도 있겠지만 철산에서 오래인
동안 노동을 했던 그로서는 거기에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기야 김남
철로서는 창렬동의 철산 일대 뿐만이 아니라 무산군의 전 군민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선 씨름꾼
으로 널리 알려졌다. 무산군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함경북도 일대의
유명한 씨름판이란 씨름판은 모조리 판을 막다시피 했을 정도의 유명
한 씨름꾼이었다. 철산에서도 같은 단위시간의 작업량이 월등히 뛰어
나 노임을 많이 받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고, 한번은 하도 화가 나서
어떤 사람을 때리고 싶었는 데 그 사람의 뼈가 으스러질까봐 차마 때
리지를 못하고 옆에 있는 섬돌을 단주먹으로 조각을 내버렸다는 소문
이 났을 정도의 장사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장마당에서고 농촌길
에서고 김남철이 지나가면 스치는 사람들마다 아는 체를 하며 그와
인사를 나누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도다. 그런 데 이런 지명도
가 숨어다녀야 하는 김남철에게는 전연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김남

철이 억울하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고 소문이 나면 동정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경찰의 보복이 두려우니 직접 도와주기는 어렵겠
고 자칫하면, 악의에서가 아니고 쉬쉬하면서도 김남철이 지나갔다는
사실이 금방 널리 알려질것이다. 그렇게 하여 존재가 노출 되는 것도
쉬울 것이다. 그러니까 김남철이 은신하기 좋은 곳은 결국“리운골”
뿐이다. 물론 경찰에서도 여선규네가 리운골에 농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니까 어쩌면 거기에도 감시의 설렁줄을 설치해 놨는지
도 모른다. 그러나 펑 씨 부부가 빈틈없이 잘 처리해 주었으리라. 펑
장롱씨 와의 우정으로 봐서도 마음 놓고 의지 할만한 집이고 그 집을
중심으로 하여 십리 이내에는 민가가 없다는 점에서도 우선 숨어 살
기가 좋은 곳이다. 게다가 지금이 팔월초. 동서남북 어느쪽을 봐도 아
득하게 이어진 구릉지대는 온통 고량밭의 연속이다, 만주에도 높은산
악지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평야지대도 많다. 평야지대의 남쪽 변
두리에 이어져 있는 리운골에는 산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의 높은
곳은 없고 펑 씨네집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리운대(麗雲臺)라는
얕으막하고 조그마한 동산이 있다. 동산 크기에 비하여 자작나무가
많이 우거진 것이 특징이랄 수 있겠는 데 여기에 올라서서 봐도 역시
울퉁 불퉁 널브러진 구릉지대 끝끝드리 수수밭이요 또 수수밭의 연속
이다. 요즘은 날씨도 덥고 하니 김남철이 낮에는 수수밭에 은신하기
도 좋을 것이다. 다만 낮이든 밤이든 모기의 등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지만 그러나 형무소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나의 처남은 틀
림 없이 리운골에 있을 것이다.”그는 찌그러지는 눈꺼플을 애써서 열
고 지천만을 바라본다.
틀림없이 자신의 문제로 그의 상사들과 의견교환이 있었을 것이라
고 짐작하는 데 여전히 지천만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는커녕 아무런
낌새도 없다. 그래도 그의 입에서 뭔가 변화를 알리는 전갈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으로 지금도 여선규는 지천만의 행동에 예민한 신경을 기
울이고 있다.
그가 나갔다 들어올적마다 습관적으로 들여다 보는 서류가 있는 데
지금도 그 것을 읽는 것인지 만져 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옇든
서류를 펼쳐 들고 있다. 여선규의 기본 신상사항을 적은 서류라느것

을 여선규는 알고 있다. 오늘 아침 이 방에 들어왔던 당시에는 워낙이
지하실에서 맞은 매의 여독이 심하여 나무의자에 앉은채로 지천만의
묵인하에 그의 책상에 머리를 얹고 거의 혼수상태로 있었다. 그렇게
하여 등허리가 끊겨 나가는 듯한 아픔을 힘들게 삭이고 있었는 데, 그
때 지천만이 묻는대로 힘겹게 응답을 하여 작성된 서류다. 여선규의
본적 주소 성명 생년 월 일 가족상황 등이 적혀 있을 것이다.
그 서류를 읽었는지 만져만 봤는지는 모르겠는 데 조용하게 시간이
지났다. 그럴즈음에 느닷없이 지천만의 나직한 협박이 들려 왔다. “함
부로 엄살을 부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어“나는 피의자들을 다루
어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엄살부리는 놈들은 제깍 알아볼 수 있다. 엄
살부리는 놈들치고 이 방에서 제발로 걸어나간 새끼는 한 놈도 없었
다.”라는 내용의 진한 협박이다. 그 협박은 분명 무섭다. 그래서 엄살
이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야겠는데 그 방법이 막연 하다. 여선규는 듣
기만하고 그대로 책상 가에 머리를 얹은채로 있었다.
엊저녁 이후 지금까지 아무 것도. 마신 것도 먹은 것도 없는 데도
땀은 어떻게 이렇게 계속해 나오는 것일까. 온몸의 상처를 스치고 흐
르는 땀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따끔거리고 쓰라리다. 게다가 파리들
까지도 무척 귀찮게 군다. 특히 등허리는 결리고 쓰리고 근지럽다. 팔
마저도 아프고 저려서 등허리에 짜증스러운 것은 어떻게도 손을 쓸
수도 없고……이 사무실 바닥에 누어서라도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천만에게 선처를 부탁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는 숨이 쉬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의 숨결이랄 수
있는 시간도 멈추는 법없이 계속해서 흐르게 마련이겠는 데 도대체
지금 몇 시나 되었을까. 숨통이 막힐 것만 같다. 가족들은 지금 어떡
하고 있을까.
“이보우다. 호시무라. 이기 무시김둥”
책상에 얹어 놓고 있는 여선규의 머리 근처를 퉁퉁치며 지천만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는 데 뭔가 불쾌한
현상이 벌어졌나보다. 그의 주먹이 금방 또 날아올는지도 모르갰다.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심사를 거스리는 행동은 피해야겠어서 그의 호
통에 순종적인 반응을 보이기로 했다. 여선규는 힘겹게 머리를 들었

다. 그리고 지천만을 바라보았다.
“이거봅세. 이거 무시기오.”
“…………”
불쾌한 표정의 지천만은 걸레를 들고 여선규의 볼이 닿았던 부분의
책상이 땀과 침으로 흠뻑 젖은 곳을 가리키며 쏘아붙인다. 그리고 그
곳을 걸레로 흠친다. 여선규는 오히려 반발심도 생겼지만 감히 입밖
에 낼 수는 없다. 미안하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책상에
접촉됐던 왼쪽 볼이 땀과 침으로 흠뻑 젖어 미끈덕거린다. 우선 척척
한 것이 싫어서 와셔츠 앞자락을 힘겹게 걷어올려 젖은 볼을 조금 문
질렀다. 그런 데 온몸의 통증이 발작적으로 휘몰아친다. 게다가 피로
인지 졸음인지 눈꺼플을 가누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지천만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감기는 눈꺼플에 힘을 주며 허리를 고
추세우려고 하는 데도 눈은 여전히 감기고 허리는 자꾸 허물어진다.
그대로 앉아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데도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걷
잡을 수 없이 허리가 무너지며 의자에서 힘없이 미끄러져 사무실 바
닥에 무릎을 꿇고 바람맞은 짚단처럼 픽 쓰러졌다.
“자알 논다. 이봅세. 여기가 사가스 하는 가설극장인가 함둥? 여기
는 항겡북도 무산군 무산겡찰서 사찰계취조실임메. 언극이 아이 통함
메. 착각으 하지맙세.…… 연극은 조금만하고 날래 일어납세.”
지천만의 조롱이 여선규의 귀에는 까마득히 높은 허공에서 울려오
는 모기소리처럼 아주 가늘고 가냘프게 들려 왔다. 계속해서 조롱소
리가 이어지는 듯한데 그 소리가 점점더 희미해지면서 집앞에 있는
뱃소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여선규가, 기석과 재석, 두 아들과 함께 리운골(麗雲鄕)에서 추수
한 벼를 멍텅구리배에 가득히 싣고 두만강을 건넌다. 아내와 부모님
들도 나루터에서 즐거운 표정을 풍기며 벼 실은 배를 맞고 있다. 여선
규가 상앗대로 배를 밀어 나루턱에 대자 기석이가 배에서 밧줄을 던
졌다. 둑에 있던 재석이가 받는 것을 엄마가 거들어 잡아딩기는 데 밧
줄에 묻었던 물이 튕겨지며 방울져 여선규의 얼굴을 때리는 찰나 움
찔하는 데서 깨었다.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날래 일어 납세”라던 지천만의 지시가 대뜸

떠오른다. 그의 빈정거림은 부드러운 것 같았지만 말뜻은 다분이 협
박투라는 것을 엊저녁아후 경험으로 잘 알수 있다. (…합세. …하기
요) 는 웃으면서 비수를 들이대는 격으로 비유될 수 있는, 이중성을
지닌 말씨다. 여선규는 그의 무분별적인 발길질이 두려웠다. 꿈을 꾸
던 시간의 길이가 잠에 빠졌던 시간이겠는 데 그 시간이 얼마동안이
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머리가 한결 개운해졌다. 그래서 지천만의
폭행이 두렵다는 인식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어서 일어나야한다. 지
천만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일어나야겠
다고 안간힘을 쓰는 데 쉽지가 않다. 온몸이 점점 더 쑤시고 저리고
결려온다. 그리고 속이 텅텅비어서인지 허리도 힘이 없다. 이마에는
진땀이 배어나는 것 같다.
“좋소. 어저는 답새기질 (때리기, 매질) 아이하겠음메. 누버있는 채
로 듣기요. 그리고 내가 묻는 말에 얼피덩 얼피덩 대답을 합세.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제대로 하믄사 내가 왜서 호시무라상에게 손으 대
겠음둥?. 나 한벌루 (함부로) 손으 대잰는 사람이락 하는 것 호시무라
상도 잘 알재이오?. 조무래선(좀처럼) 작수리(작대기, 몽둥이) 르 들
거나 그런 헹사부장 애이요. 호시무라상이 나으 성격으 잘 알끼오. 그
러나 이 무산겡찰서에는 나보다 높은 새람들이 많재이요?. 그 높은
어른들이 아적 나절에 출근을 하자마자 한시간 이내에 조서르 올리라
고 명령으 했다고 내 말했재이요?. 그런 데, 호시무라상이 아강이르
열었슴둥? 아이 열었재이요?. 호시무라상으 말으 받아 쓰능기가 조서
인 데 호시무라상은 말으 안했재이요? 내가 그렇게 사정으 했는 데도
나으 입장은 꿈에도 봐줄 생각이 없구 아강이르 꾹다물어 베렸재이
요?. 자아……시간은 쉬지 않구 흘러가지비. 조서는 아이 되지비……
사찰주임에게서 독촉은 되비되비 오지비, 생각해 봅세. 나으 입장이
워찌 되겠슴둥? 속이 활활 타고 푹푹 썩고, 그럴 것 애이겠음둥? 그래
두 닷서 참느라고 노력은 했습메. 그렇지만 참다참다 몬하구 손으 댄
기요. 화가 나서 그리 된 것이니 양해 합세. 내 진심이라믄사 그렇게
하구잡었겠음둥?. 진심이 애이요. 헹사부장이락 하능 책임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니 양해르 합새.”
지천만은 말을 마치고 책상을 돌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선규 곁

으로 뚜벅뚜벅 다가온다. 여선규는 또 지천만의 발길질 소나기가 쏟
아지는 것이 아닌가하여 몹시 두려웠지만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 우
선은 일어서는 것이 말막음이 되겠는 데 도저이 일어설 수가 없다. 최
소한 지천만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 같은 인상은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여선규 얼굴앞에 멈추어선 지천
만이 잠시 주춤거리더니 묻는다.
“호시무라상 왜서 그리 눈으 감소? 자부롭슴둥?”
“……………?”
자신이 쓰러져 있는 것을 엄살로는 보지 않나보다라는 생각에 우선
한숨을 돌린 여선규는”날래 일어납세”에는 그 말 뜻에 걸맞는 대응자
세를 어떻게 취해야 하나로 생각을 굴려 보았다. 하지만 (자부롭슴
둥) 이라는 말씨에는 약간 측은해하는 낌새와 더불어 여선규가 취할
대응 태세에도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천만의 인품이 겉다르
고 속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제 오늘의 경험에서 뿐만이 아니
라 오래전서부터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여
선규와 어울렸던 술좌석에서 몇 번 들은 적도 있다. (거짓말 잘하는
형사가 유능한 형사) 라고. 그런데, 그가 직무수행상에 방편으로 거짓
말을 잘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의 인격적인 바탕에 이중성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지천만의 머리는 영리한 소년으로 알려졌
다. 학업성적이 그 학년에서 최고 수준은 아니었지만 항상 상류급에
속할 정도의 수준은 유지 했었노라고, 지천만의 입을 통하여 여러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자랑을 하는 지천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
며 여선규는 고개만을 끄덕였을 뿐 칭찬도 공감도 하지는 않았다. 그
의 아버지 지형돌씨가 무산역에서 화물차에 목재를 실어주는 목도꾼
이었다. 타고난 체력이 튼튼해서 그런 막노동 판에서는 그런 대로 자
기몫을 감내하며 생계를 꾸려 가는 처지이지만 아들의 중학교 진학이
라는 문제는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보통학교까지 졸업한 아들을 노
동판에 내보낸다는 것은“학력이 아깝다”고 생각한 지형돌은 아들을
관청에서 철필을 들고 사무를 보는 월급쟁이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염원이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 당장 그렇게는 안된다. 우선

소사자리에라도 들어갈 수 있으면……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는
것처럼 나중에 어엿한 관리로 자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
다. 지형돌이 무산읍 일대의 노동판에서는 이름도 얼굴도 알려진 처
지지만 관청 계통에는 전연 아는 사람이 없었는 데, 어떻게 좀 줄을
댈만한 연줄이 없을까를 기회있을 적미다 수근거려 보곤 하였다. 도
대체 소사자리로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런 자리가 나나 안나나를
알아볼 수 있는 연줄도 없었으니 오직 막막할 뿐이었다. 천만 뜻밖에
도 전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지천만의 모교 은사에게서 기별이 왔다.
오 륙 학년당시, 그러니까 이 년간 학급담임을 맡았던 요네모도 (米
本)선생이 지천만을 학교로 불렀고 그의 의사를 타진하였다. 그 오후
에 지형돌이 아들을 앞세우고 요네모도 선생에게 달여 갔고 이어 요
네모도 선생의 소개장을 가지고 지천만 부자가 경찰서엘 달려 갔다.
그러나 경찰서 정문 근처에 도착한 지천만 부자는 대뜸 경찰서 안으
로 들어가지는 못하였다. 기가 꺾인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순사들이
우글거리는 경찰서엘 감히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사뭇 떨렸다. 그 건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뼛거려 졌다. 그렇게 그 경찰서 건물앞에서
한동안 어물거리며 요네모도 선생의 소개장이 들어 있는 봉투만 만지
작거렸다. 그 봉투의 앞쪽을 봤다 뒷쪽을 봤다하기도 하고 발끝으로
땅에 별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낙서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어
찌보면 한일자 (一) 같기도 하고 무지개 같기도한 그런 선을 긋기도
했다. 그 사이 지형돌은 담배를 세 대나 피웠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
는데 어떤 순사가 경찰서로 들어가려다가 지천만이 들고 있는 봉투를
보더니 멈춰섰다.
“기미라 나제 고꼬니 기데 오루노”(자네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지천만이 조심스럽게 나서며 입을 연다.
“아노오, 게이무 슈닝 도노니 요오지가 아리마스노데”(저 경무주
임님께 볼일이 있어서요)
말을 하면서 지천만은 봉투를 보였다. 그 봉투를 받아들은 순사는
보내는 사람과 받을 사람의 이름을 살피고 나서 지천만에게 되돌려
줬다. 지형돌은 한마디도 못알아 듣는 말이었지만 일본순사와 일본말
로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는 아들이 무척 대견스러웠고 금방 순사가

된 아들을 보는 듯 했다. 그 순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는다.
“소레나노니 난데 고꼬데 구즈구즈 시데 오루노”(그런데 왜 여기서
어물거리고 있는 거야 ? )
지천만은 무어라 말댓구를 못하고 생글거리기만 했다. 영문을 모르
는 지형돌은 그저 아들이 기특하기만 하여 싱글거리며 두 사람의 표
정을 번갈아 살핀다.
그 순사는 경찰서로 들어가며 따라오라고 했다. 청내에 들어서서도
그 순사의 인도를 받아 경무계 (警務係) 라는 쪽표가 걸린 방으로 들
어 갔다. 함께 들어간 순사도 마침 그 경무계에 근무하는 오다(太田)
순사라는 걸 알았다. 오다 순사가 지천만에게서 소개장을 건네받아
경무 주임에게 넘겼고 소개장을 읽고난 경무주임이 그 앞에 서있는
지천만에게 씽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소개장을 다시 오
다 순사에게 넘기며 지천만에게는 오다 순사의 지시를 받으라고 일렀
다.
매일 아침 여더덟시까지 출근 한다는 것을 비롯하여 앞으로의 근무
요령과 업무 세목을 전달 받았다. 이렇게 해서 지천만이 무산경찰서
소사로 채용 됐다. 그날 저녁에 그의 집에서는 지형돌의 동료 목도꾼
들을 초대하여 흥겨운 잔치가 벌어졌다.(백두산 호랑이가 이 세상에
서 제일 무섭다는 데, 무산군에서 제일 무서운 관청이 무산경찰서 아
니냐. 무산 서장이 한번 화를 내면 산천초목이 벌벌 떨텐 데 그런 높
고 훌륭한 서장을 우리 천만이는 저의 아버이 만나듯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마음대로 만날 수 있다. 아주 높고 무서운 관청에 취직이 되었
다).며 지형돌은 어깨를 으쓱거렸고 손님들도 그렇게 맞장구치며 축
하하였다. (군청이나 읍사무소 소사들은 우리 아이의 밥이다) 라고
팔을 걷어 붙이며며 기염을 토하는 지형돌의 호기에 (소사들 정도가
아니라 군청 읍사무소 서기들이 모조리 다 천만이 한테 꼼짝도 못할
것이다) 라고 좌중의 동료 목도꾼들도 신바람을 날리며 박수를 치고
환성을 올렸다.
경찰서에 출근하여 시일이 흘러가면서 서원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
하였다. 우선 총명하여 한 번 지시한 것은 어김 없이 지시된 시간내에
처리했고 한 번 가르쳐 준 것은 정확하게 명심하여 배운대로 처리 하

곤 하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는 과정에서“강의록”이라는 독학
할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곧 일본에 주문하여 중학교과정
의 강의록을 받아 공부도 시작하였다. 전연 기초가 없는 영어문법에
애로가 있었는 데, 경무 주임이 기꺼이 가르쳐 쭈었다. 그렇게 하여
일년만에 중학교과정을 이수하였고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시행하는
검정고시를 청진에서 치렀고 합격 하었다. 그래서 서장을 비롯한 여
러 경관들에서 축하인사와 칭찬을 받았다. 서장과 경무주임에게서 고
급생과자 한 상자씩도 선물로 받았다. 지천만의 어머니는 그 생과자
를 여러 이웃들에게 나눠 주었고 또 칭찬과 축하도 많이 받았다. 지천
만을 귀엽게 여기는 경관들의 권유로 독서도 많이 했다. 주로 일본과
중국 역사에 관한 책이 많았고 소설도 더러 읽었다. 조선역사책도 읽
고 싶었는데 구할 수가 없어서 못 읽었다. 읍사무소에 소사로 있는 여
선규는 학교에 다닐적에도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같은 읍내의 관청에
근무한다는 관계로 오다 가다 노상에서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천만의 나이가 성년이 되었다. 읍사무소에 근무
하는 여선규는 이미 이 년 전에 읍사무소 서기가 되었고 세 살 아래인
지천만도 성년이 되었다. 경무주임과 서장이 적극 권유하여서 경찰
채용 시험을 치렀고 순사가 되었다. 기초교육 육 개월간은 경성(京
城) 에서 받았지만 실무교육 일 년간은 일선 경찰서에 배치되어 이수
하게 되었다. 그런 시책에 의하여 여선규는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경
찰서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일년간의 실무교육과정을 마치고 집무
능력을 갖춘 순사가 되었는 데, 당연히 고향 무산경찰서로 배치될 것
으로 기대했던 여선규의 희망이 빗나갔다. 발령 된곳은 함경북도에서
가장 북쪽끝인 온성경찰서(穩城警察署) 였고 거기서 다시 남양주재
소(南陽駐在所) 로 배치 되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의 도문
(圖們) 과 마주보고 있는 곳이니까 국경의 요지인 데, 말이 주재소지
왼만한 농촌 경찰서만한 규모의 경관들이 있었다. 그래서 주재소장도
순사부장(巡査部長)보다 한 등급 위인 경부보(警部補) 였다. 지천만
의 담당업무는 밀수행위의 감시와 수사였다. 만주에서 조선으로 나르
는 아편 밀수 행위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들의 사상적인 동

향, 정치성을 띈 활동을 감시하고 체포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삼는 고
등계 형사도 여러 명 있었다. 다른 경관들은 두만강을 건너 만주엘 가
자면 주재소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고등계형사는 신고도 허락도
필요 없이 자유롭게 만주엘 들랑거린다는 것을 알았다.
남양주재소에 삼년간 근무하였다. 그 사이 일 년간은 남양 주재소
에서 고정 근무를 하였고 나머지 이 년간은 기차를 타고 만주엘 넘나
드는 이동근무를 했다. 조무래기 아편밀수범 여남은 명을 적발하여
본서로 넘기기는 했지만 좋은 성과는 아니었다. 이 년간이라는 기간
에 비해서도 그렇고 상당히 많다고 일컬어지는 아편 밀수꾼들의 숫자
에 비해서도 그렇다. 그런 데 이상한 것은 지천만과 함께 타고 달리며
수사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동료들이 있는데, 그 열차에서도 굵직한
밀수 범은 꼭꼭 다른 동료가 적발한다는 사실이다. 어른 주먹만한 밀
수 아편을 적발하여 서장의 표창까지 받는 동료들이 가끔 있는 데 지
천만은 남이 표창받는 구경만 하고 축하인사나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
다. 결국 수사는 경력이라는 경찰관들 세계의 속담이 농담아닌 진실
임을 실감하곤 했지만, 수사에 능숙한 사람이란 오관기능이 남다르다
던가 제 육감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끄나불”을 잘 움직여야 한다
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훌륭한 포수란 포수 자신이 훌륭한 것이 아
니고 사냥개가 훌륭하다라는 말과도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이런 농
담과도 같고 진담같기도한 말을 몇 차례 듣고나서 지천만은 자신의
앞날에 관하여 차츰 회의적인 불안감이 움트기 시작했다. 관리의 세
계에서는 보다 빨리 승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계급과 임관된 날
짜 수까지 따지는 경찰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자면 연공
승진 (年功昇進)을 기대하기는 너무 지루하다.
또 경력이 많다고 하여 모조리 승진 되는 것도 아니지않은가. 몇 십
년씩 근무 하다가 평 순사로 물러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더군다
나“나는 조선인이다”승진문제가 논의 되는 기회가 있다면 조선사람
보다는 일본인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비밀이다. 그
러니까 일본인 동료를 훨씬 앞지를 만한 공로가 있어야한다. 그런데
상사에게서 인정을 받을만한 공로를 세운다는 것은, 특히“특진대상”
이 될만한 공로를 세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물이 커야 많

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 많은 고기들 중에서 잔챙이는 골라 다른 동
료에게 주고 큼직한 고기만을 골라 잡는다면“나는 아주 유능한 경
찰”이 되는 것이고 일본인 동료들을 앞질러 승진에 승진을 거듭할 것
이다. 지천만은 누우렇고 굵은 금테가 둘려진 모자를 쓰고 자신의 어
깨에서 굵은 금테가 번쩍거리는 견장(肩章)을 보며 빙그레 웃는 순간
손가락이 뜨끔했다. 고무산 산악지대에 곱게 물들은 단풍을 내다보며
승진가도를 줄기차게 달리는 환상에 도취되여 손에 들고 있는 담배가
다 타들어가는 것을 몰랐다. 손가락이 뜨끔하여서야 제정신을 차리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 두손을 깍찌끼어 두팔을 머리위
로 힘주어 뻗으며 책상에 앉은채로 상반신을 좌우로 꺾었다. 사냥개
는 있어야 한다.”나도 명 포수가 되자”
“끄나불”을 어떻게 구성 하고 어떻게 조정 하는냐를 가르쳐 주는
상관은 없고 동료도 없다. 하기야 안 가르쳐 주는 것이 당연한 노릇일
런지도 모른다. 그 것이 유능한 경찰로 가는 지름길이고 영전이나 승
진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편이라면, 한정된 영전이나 승진 자리
를 놓고 볼 때“그 자리에 네가 가면 내가 못간다”라는 이해 타산이
작용할 수 밖에 없으리라. 그러니 물어 본들 선선하게 가르쳐 줄 사람
들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어떻게 할까……나도 수사의 명포수가 되
어 어깨를 활짝펴고 순사가 운전하는 사이드카아에 편안히 앉아 달리
며 지나 다니는 경찰들의 경례를 가볍게 답례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
려 본다. 몇 달 동안이나 끙끙거리며 궁리를 거듭했다. 끄나불을 만들
자. 사냥개를 키우자. 방법은 있을 것이다. 지천만은 머리를 끄덕였
다.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경쟁의식”의 경쟁이라는 사실이다. 머
리를 짜자. 비밀을 철저히 간직하자. 영전 또는 승진을 위해서는 자기
만의 수사비방을 간직해야 한다………고 거듭거듭 머리를 끄덕였다.
남양주재소에 근무한지 육 개월쯤 되던 가을에 지천만은 이정숙이
라는 부령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부령경찰서에서 실무견습생으로 있
을 때에 하숙을 했던 집의 딸인데 그 때 이미 깊은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었고 그레서 결혼 한지 두 달만에 아들을 낳았다. 수웅(秀雄)이
다.
두드러지게 칭찬 받을 만한 성과는 못올렸지만 그렇다고 책망을 들

을 만한 과오도 없이 남양에서 삼년간 근무하다가 온성 본서로 옮겨
졌다. 내근과 외근을 동료들과 엇바꿔가며 거기서 또 삼년을 지냈다.
그리고 전근 되어 간곳이 실무견습생으로 있었던 부령경찰서 였고 처
가가 있는 고장이라서 아내 이정숙이 깡충 뛸 정도로 무척 좋아 했다.
지천만의 장인 이현식은 목상이다. 함경북도 일대의, 아니 압록강
과 두만강 주변의 그 광활하고 울창한 삼림지대의 벌채권은 모조리
일본인들 만이 가지고 있다. 수천 군데의 지역 단위 벌채 구역도 모조
리 일본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한 군 데의 예외도 없이 깡그리 일본인
들이 벌채권을 가지고 있고, 벌채된 임산물이나마도 두 다리 세 다리
의 일본인 중간상인들을 거쳐서야 조선 사람들의 손이 닿는 곳에 온
다. 일본인 중간목상들은 임산물이 어땋게 생겼는지 구경도 못하고
서류만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어 가는 과정에서 임산물값은 춤을
추며 겅중겅중 올라간다. 생산 원가의 몇 배로 오른 실물이라야 조선
가람들의 손길이 닿는 곳에 온다. 이 나무더미 앞에 우르르 몰려들어,
발기발기 찢어서 이리 저리 넘기고 팔고 하면서 이익을 조금씩 얹어
먹는 목상은 그래도, 조선사람의 임산물취급 사업규모로서는 조금 큰
축에 속하는 데 이현식은 바로 이런 층에 속하는 목상이다. 일년간에
약 육 개월간은 공장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고물일 망정 트럭도 한
대 있다. 집도 이 부령에서는 몇 집안될 정도로 꽤 크다. 객방과 안
채, 두 동으로 되어 있는 건물인데 물론 기와집이다. 이 객방에는 어
떤 나그네든 하루밤 유숙을 청탁 하면 군소리 없이 숙식을 제공한다.
객방의 침구는 항상 깨끗해야 하고 음식도 주인들이 먹는 것과 차이
없이 정갈하고 맛깔져야 한다. 이현식의 주장이고 그 부인의 마음씨
이기도 하다. 장마철에 여기 저기에 홍수가 났다던지, 또는 이지역의
특징인 대설이 내려 교통이 마비 된다든지 할라치면 그런 불편한 상
황이 해결 될 때까지, 며칠간이든 몇 달간이든 나그네를 못가게 한다.
일년에 객식구가 삼백 예순 여섯명이라는 말이 날정도로 거의 날마다
군식구 없는 날이 없다.
이현식이 딸 정숙이가 지천만과 남몰래 만난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
다. 식모들의 입을 통하여 정숙의 어머니에게 득달같이 알려졌고 그
어머니는 조용히 딸을 불러 확인 하였다. 그리고 남편에게 알렸다. 이

미 반대하고 찬성하고할 여지가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였
기 때문에 이현식은 지천만을 불러서 조용히 타이르면서 결혼할 것을
승낙 했다. 그런 데 사실은 경찰권력을 가진 지천만을 사위로 맞게 된
것을 이현식은 내심에 반기었다. 임산물을 다루는 사업에다가 비록
고물이 다 됐을 망정 트럭을 운행 한다는 것은 항상 경찰 눈치를 살펴
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경찰관이 사위라면 바람막이의 울타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지천만네 의식주 생활을 아주 처가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처남이
청진에서 제철공장에 다니기 때문에 그 가족들이 쓰던방 두 칸 중에
서 한 칸을 지천만네가 쓰기로 했다. 다른 방도 있지만 그 방이 널찍
하기 때문이다. 지천만네 부부가 무엇보다도 마음 편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수웅이가 어쩌다가 밤중에 보채고 우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온성에서처럼 주인집 식구들에게 죄책감이나 송구스런 생각이 전연
나지 않는다는 점이고 아무데나 낙서를 하더라도 외조부모들이 재롱
으로 보아 준다는 점이었다. 고무산성(古茂山城)을 포함한 부령군의
주변 일대가 대체적으로 산악 지대지만 그런 중에서도 부령군의 중앙
지대는 비교적 농토가 넓다.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수성천(輸城川)이
부령군의 중심부를 거의 직선으로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용수 문
제는 대체적으로 애로가 없다. 그런 자연 환경 때문에 부령읍은 임산
물 농산물 등의 풍성한 집산지이기도 하다. 그런 데다가 고무산 일대
의 산은 거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데, 그래서 양회공장이
생겼고 거기서 뿌려지는 인건비를 비롯한 농산물 임산물의 소비 대금
등이 지역경제를 윤택하게 하고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동북부로 조
금 떨어진 곳에 있는, 두만강 수계(豆滿江水系)인 성천수 상류(城川
水上流) 에 있는 부령 발전소의 발전량은 삼만 키로와트인데 부령군
일대의 공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일찍부터 알려진
고장이다. 조선조 세종때 여진족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김종서(金宗
瑞)로 하여금 설치하게 하였 던 육진(六鎭)중의 하나인 바로 그 부령
진이다.
부령경찰서에서도 인사운용은 규정대로 관행대로, 주재소와 본서
를, 또는 주재소에서 주재소로 왔다 갔다 하는 방식이었는 데 관내의

여덟 군데 면(面) 중에서 몇 군데의 주재소를 거치는 과정에 지천만
은 고무산면 주재소로 옮겨 왔다. 칠 년전, 부령경찰서에서 실무견습
생으로 있을 때에도 어렴풋이 듣기는 하였지만 실제로 와서 보니 과
연 들었던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우선 주재소 인원 수가 다
른 곳의 주재소의 배나되는 여섯 명이었다. 모찌쓰끼(望月) 주재소장
도 유도 사단의 장골이라고 알려졌는 데 과연 건장한 체구였다. 함경
선(咸鏡線)과 무산선(茂山線)이 갈라지는 철도 교통상의 요충인 데,
무산까지는 거리가 육십 키로미터.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다. 부령읍
에서 불과 팔 키로메터 북쪽인 정도건만도 여기엘 오니까, 부령에서
는 그렇지 않았는 데 마치 고향 무산에 온 듯 한 환각을 느낀다.
이 곳은 양회공장에 천 여명의 노무자가 있는 데다가 산판의 벌목
꾼 목도꾼 그리고 여러군데의 토목공사판의 노동자들, 그리고 이런
근로자들의 주머니를 기웃거리는 사기꾼들 잡상인들이 우굴거린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무산면이란 한낱 산골 마을인 데도 현실상황
은 어떤 산업도시에도 못지 않을 정도로 경제력이 윤택하고 시장분위
기가 상당히 흥청거리는 고장임을 대뜸 알 수 있다. 젊은 무당의 굿판
에는 건달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산골도시에 돈이 출렁거리니 모산지
배들이 떼거리로 모여들었단다. 저녁마다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게걸
거리며 싸움박질을 하는 경우가 많고 풍속사범도 많다는 것이다. 밤
낮의 구별이 없이 사회질서 유지에 애로가 많은 데다가 요즘은 불령
선인(不逞鮮人)들까지 나타난다는 정보도 있단다.
고무산성에서 부령읍 까지는 불과 팔키로메터니까 자전거 통근이
충분하다. 지금까지 다른곳의 주재소에 근무할 때에도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자전거 통근을 하려고 하였다. 지천만은 그런 의사를 주재소
장에게 밝혔다. 모찌쓰끼(望月) 순사부장은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함
경북도의 어느 도시보다도 사회질서가 어지러운 곳인 데, 이십 리 거
리나 떨어진 곳에서 통근한다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다른 곳의 주
재소보다 직원 수가 많은 것을 봐서도 알 수 있을 것 아니냐는 것이
다.
할 수 없이 방을 구하러 나섰다. 이사는 하지 않고 방이나 한 칸 얻
어 지천만 혼자 숙식문제를 처리하며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로 부령

읍에 드나들며 옷이나 갈아 입는 방향으로 하겠다는 생각이다.방 구
하기가 쉽지 않았다. 각종 노동판에 품팔이 일거리가 흔한 관계로 부
동인구가 많은 영향이라고 한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여인숙 집의 방
을 한 칸 구했는 데 숙식을 포함하여 한 달에 쌀 다섯말이다. 원래는
독방을 쓰며 식사까지 한다면 쌀 여덟 말을 받아야 하지만“순사나
리”에게는 특별히 싸게 드린다는 것이다. 간판은 없고“춘삼이네”집
으로 통하는 여인숙이라는 데“춘삼”이는 연전에 장질부사로 죽었고,
사십대 안팎으로 보이는 그의 부인“깡마른 여인”이 이남 일녀, 삼남
매를 데리고 세 칸의 객실을 가지고 여인숙을 친다는 것이다. 남편이
가고나서 한동안은 어려웠지만 큰 아들이 자라서 양회공장에 다니게
되면서는 한숨 돌렸다고 깡마른 여인은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 늘어
놓고 빙그레 웃는다. 고무산면에서 접객업소로서는 가장 엉성하고 누
추한 가옥인 것 같다. 주재소에서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도 결함이다.
아쉬운대로 우선 들고 차차 알아보면서 반반한 집으로 옮기겠다는 생
각이다. 지천만의 고무산주재소 근무가 시작 된지 그럭저럭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아닌게 아니라 상당히 복잡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뒷골목에서의 싸움이다. 해만 지면 고함과 욕
설이 여기 저기서 튀어 나오는 데, 남녀의 차이가 별로 없다. 물론 절
대 숫자야 남자들이 더 많겠지만 여자들도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 술
에 취해 예사롭게 웃통을 벗어 붙이고 상대방의 부모를 들먹이며 그
부모들의 가려야할 곳을 거침없이 줏어 섬기는 욕설을 퍼붓는 여자들
을 볼 때 단속을 하는 지천만도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경우가 가
끔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천만도 육두문자를 안 쓰는 것은 아니
다. 육두문자정도가 아니다. 혐의자를 다룰적에 정히 화가 나면 음담
패설을 막 퍼 붓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차별이 없고,
또 주위에 다른 경찰들이 있거나 외부인들이 있거나 가리지 않고 거
침없이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다. 그러나 (남자가 그러면 어때. 그리고
난 순사잖아?)라는 면책의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여자들이, 아무리
술에 취하였다 할지라도 장바닥에서 웃통을 벗어붙이고 남자를 상대
로 하여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팔뚝을 내밀어 다른 한손으로는 그 내
264 소설
민 팔뚝을 훑어 올리는 식의 욕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동양 예법에
어긋난다) 는 확신이다. 하기야 혐의자에게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하
여라는 명목으로 모진매질도 거침없이 휘두르는 지천만의 직업의식
으로서는 여자 혐의자들에게 욕설을 좀 퍼붓는다 하여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리라.
여기와서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 부정확한 정보는 나누어 갖는다
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천만이 얻은 정보가 남자들의 도박판에서 큰
돈이 오간다는 예기와 아편굴도 있다는 정보다. 그런 데 이 두 가지는
장소의 이동이 빈번하고 끼리끼리의 자체 단속과 비밀이 철저하끼 때
문에 좀처럼해서 적발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실속이 없는 정보
라서 지천만에게까지 흘러 왔나보다. 지천만이 고무산 주재소에 온지
가 벌써 넉달이 지나 구월 하순으로 접어든다. 북녘땅, 그 중에서도
내륙지방인 고무산에는 벌써 가을이 살랑살랑 물러나며 겨울이 얼찐
거리기 시작하면 산과 들의 초목들은 단풍물이 거의 빠지고 메말라
가기 시작하니 삭풍은 낙엽을 재촉한다.
당번은 아니지만 낮에는 주재소가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에, 여느
때도 그런 적이 있던 것처럼 지천만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빙빙 돌
고 있다. 지시받은 순찰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이 있는 것도 아
니니 급하지도 않다. 일정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또 자신이 사사로이
만날 사람도, 찾아갈 곳도 없다. 그런 데 장갑을 안 끼어서 손이 좀 시
리다. 그는 기왕에 나온 김에 숙소에 가서 장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
대문이 걸렸다. 일각대문인 데 전에 없던 현상이다. 지금까지 낮에
숙소에 들른 적이 더러 있었다. 그럴적마다 주인아주머니가 집에 있
었던 것은 아니다. 집이 비어 있을 적에도 대문을 걸어 놓은 적은 없
었고 지쳐져 있은 적은 있다. 오늘은 걸려 있는 것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대문을 안에서 걸은 것이다. 주인아주머니든 누구든 사람이 안
에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전에 없이 왜 걸었을까. 지천만은 문짝을
흔들어 보았다. 문짝에 걸려 있는 요령이 딸랑딸랑 울렸다. 잠시 기다
려 보았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갑갑하여 불러보기로 했다.

“아주망이 있소 ?”
“……………”
기척이 없다. 한번 더 불러봤다. 역시 잠잠 하다.
“……………?”
지천만은 불현 듯 의혹이 꿈틀했다. 왜 대문을 안에서 걸었을까. 그
리고 대문을 흔들어도 기척이 없고 큰소리로 두 번씩이나 불렀는 데
도 응답이 없지 않은가. 집안에 분명히 사람은 있겠는 데 왜 응답이
없는 것일까. 집이 그다지 큰집도 아니지만 뜰도 별로 넓은 집이 아니
다. 요령소리도 분명히 들었을 것이고“내가”부르는 소리도 틀림없
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데도 기척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숨겨야
할 상황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떤 상황일까. 지천만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전거 세우개를 발로 조용히 제치며 천천히 끌었다.
그의 머릿속은 가상의 상황들이 번득이기 시작한다. 주재소에 비치된
호구조사 대장에서 보았던 것을 기억 하는 데. 주인아주머니의 이름
은 심언년이고 나이는 사십이 세, 양회공장에 다니는 큰아들은 정길
남, 올해 이십이 세다. 지금 정길남의 어머니가 밀애를 나눈다 해도
망칙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부가 놀아났다라는 소문이 퍼지면 공
연히 비웃는 사람들은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거야 비웃을 사람은 비
웃고 태연할 사람은 태연하면 되는 것이다. 유부녀가 놀아나는 경우
도 많은 데 과부가 밀애를 나누었다 하기로소니 그 것을 부도덕 하다
고 비웃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또 하나의 가정은 도박?. 고무산에 도
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설마하니 순사가 하숙하
는 집에 와서 까지 도박판을 벌일만한 배짱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