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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동화-장선옥]바다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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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85회 작성일 05-04-0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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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할아아버버지지의의 선선물물
초록빛 물을 저울질하는 얕은 포구가 있는 마을입니다. 포구 뒤편
에는 몇 안 되는 집들이 계단처럼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맨 꼭대기에
는 성황당이 오랫동안 하늘과 맞닿은 채로 가까이 앉아 있습니다.
나는 어제처럼 성황당의 기와 지붕에 붙어 있는 꼬마 소나무 위에
걸터 앉았습니다. 서너 사람이 올라앉아도 넉넉한 이 나무는 옆으로
비스듬히 뉘어 있습니다. 등대가 손바닥만하게 보입니다. 등대 너머
로 빠알간 혀를 날름대며 해가 길게 목을 뺍니다. 오리바위의 등에 앉
아있던 갈매기들이 날개를 털며 일어납니다. 갈매기들의 기상 나팔은
바다울림이 되어 마을 전체로 잔잔히 퍼져 나갑니다.
그 때, 저만치 작은 나룻배가 물에 떠가는 나뭇잎처럼 물결에 밀려
옵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를 부르며 집으로 쏜살같
이 달려갑니다.
“할머니……. 할머니…….”
“…….”
“할머니, 지금 들어오고 있어요. 빨리요.”
할머니는 부엌에서 나물을 다듬다가 놀라서 뒤돌아봅니다. 빨갛게

달아오른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봅니다.
“원, 애도…… 그렇게 서두르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누.”
“할머니, 벌써 도착했겠어요.”
“할아버지가 많이 잡으셨겠지?”
“그럼요. 우리 마을에서는 최고잖아요. 할아버지만큼 고기를 많이
잡으신 어부가 있었나요?”
“그래. 얼른 나가보자.”
할머니는 커다란 대야를 손에 들고 집을 나섭니다. 나는 찰랑거리
는 머리카락을 빗어올리며 할머니를 따라 갑니다. 약간 굽은 할머니
의 허리가 걸음이 빨라질수록 더 휘어집니다.
포구에 다다르자, 태영이가 먼저 나와서 손짓을 합니다. 태영이네
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태영이 아버지는 동네
에서 유일하게 자동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 태영이는 아버지의
차를 타고 학교에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모두 태영이 곁
에 서서 부러운 듯이 쳐다봅니다.
“너희 할아버지께서 저 쪽에 배를 대셨어.”
태영이는 얼굴을 돌려 손가락으로 선착장 끝을 가리킵니다. 할아버
지께서 배 안에 노를 가지런히 내려놓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마워.”
“성아야, 오늘 우리 배에 확성기를 달거야.”
“왜?”
“응, 아버지께서 필요하실 때가 있으시대. “
“너희 집은 부자니까 할 수도 있겠지. 그걸 자랑하려고 이렇게 일
찍 나와 있었니?”
나는 뾰루퉁해진 얼굴로 태영이를 흘겨봅니다. 태영이는 비밀이 탄
로나기라도 한 것처럼 뒷걸음질을 치며 사라졌습니다. 나는 멀찌감치
앞서가는 할머니의 뒤를 터덜터덜 따라갑니다.
할아버지께서 손을 흔드십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한
결 밝아집니다.
“우리 성아, 늦잠 잤구나. 허허허.”
“무슨 말씀을요. 새벽부터 일어나 성황당에 올라가 있었는 걸요.”

“그래? 그럼 이 선물은 네 거다.”
“할아버지, 무엇인데요?”
“눈을 감으렴. 손은 앞으로 내밀고. 어서.”
“자, 됐어요.”
할아버지의 거친 손이 스치고 아주 보드라운 촉감이 전해져 옵니
다. 나는 두 손을 포개어 살며시 만져 봅니다.
‘뭘까?’
나는 눈을 감은 채 몇 번이고 되뇌입니다. 감은 눈을 깜빡거리며
흘낏 훔쳐봅니다. 눈이 점점 더 커집니다. 솜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깃
털을 가진 새가 고개를 내밉니다. 한 뼘 정도의 키를 가진 작은 새가
내 얼굴을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새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숨이
멎을 것만 같습니다.
“할아버지, 진짜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그물을 들어올리며 싱긋이 웃습니다. 할머니는 성아의
손 안에 웅크리고 있던 새를 들추어 봅니다. 따뜻한 기운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져 옵니다.
“성아야, 이 부리 좀 봐. 여기 이슬같은 눈하고. 어쩜 너하고 똑 닮
았니? 아유, 예쁘기도 해라. 영감, 이 아기새는 어디서 났어요?”
“할아버지, 정말 귀여워요.”
“그물을 걷으려고 그물 쳐놓은 우포로 가다보니 웬 큰고기가 펄떡
펄떡 뛰어 올랐다 내려갔다 하지 않겠어? 그래서, 더 빨리 노를 저어
가보니 그 새가 그물에 걸려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고 있더군. 너무 애
를 쓰다 축 늘어지길래 죽은 줄 알았지. 너무 가엾어서 돌아와 묻어주
려고 뱃머리에 두었어. 아, 그런데 이 놈이 가만히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리는 거야. 꼭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처럼.그래서, 네 소원 풀어주
려고 데려왔지.”
“제 소원요?”
“전부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잖니?”
“그럼, 이 새가 이제부터 제 동생이예요? 동생은 심부름도 할 줄 알
고 같이 놀기도 해야 하는데. 이 새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할아버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뭐든지 처음부터 잘하는 법은 없어. 으흠.”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빨간 등대 너머로 눈길을 돌립니다. 아
마도 아들 내외가 등대를 지나 포구로 들어오다 파도에 휩쓸려 사라
진 자리를 훑어보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사사라라진진 배배
3년 전, 내가 10살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문어, 소라, 가자미
같이 비싸게 팔리는 고기나 골벵이를 잡아 돈을 모았습니다. 일년 내
내 파도가 높을 때만 빼고 하루도 쉬지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일하러 나갔다가 저녁 늦게야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먼저 통통배를 한 척 샀습니다.
아침 햇살을 가르며 잔뜩 잡아 올린 고기를 싣고 통통통 소리를 울
리며 선착장에 닿으면 아버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언제나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나도 같이 손가락을 쳐들며“장해창!“하고 아버
지의 이름을 부르면 아버지는 화난 사람처럼“이런 버릇없는 놈!“ 하
고 말했다가 금방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그만 욕심을 내고 말았습니다. 더 큰 배를 마련하려
고 선원들을 모두 내리게하고 집안 살림만 하던 엄마를 바다로 끌어
들였습니다. 처음엔 배멀미로 짜증을 내던 엄마도 선원들에게 나눠주
던 돈을 한꺼번에 다 갖게 되자,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열심히 뱃일에
매달렸습니다. 고기잡는 어구도 손질하고, 투망도 하고, 냄새나는 미
끼도 척척 주물렀습니다.
추석 다음 날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더 쉬라고 말리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부모님은 새벽
어둠을 밟으며 바다로 나갔습니다. 아침까지 잔잔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며 파도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마당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할아버지는 대바늘을 방바닥에 휘익 던
져놓고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나도 걱정이 되어 몰래 뒤를 따라갔습
니다.
“우리 배는 아직 안 온 가봐?”
할아버지의 떨리는 음성이 가슴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할아버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파출소로 향하
였습니다.
“소장님, 어떻게 연락이 된거요?”
“날씨가 워낙 갑자기 변해서 정신이 없네요. 작업을 하고 있는 배
들에게 다른 큰 항구로 들어가라고 무전연락은 했구만요, 어르신. 성
아 아버지와도 연락은 했으니까 주문진이나 동해항으로 입항할 겁니
다. 마음놓고 편히 계십시오. 성아야, 얼른 할아버지 모시고 가렴.”
파출소 출입문 뒤에 숨어있던 나는 들키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무사할 거라는 말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파출소를 막 나설 때였습니다.
“악-”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빗속을 뚫고 들려왔습니다. 할아버
지와 소장님, 나 이렇게 세 사람은 소리에 놀라 엉겹결에 부두로 달려
갔습니다. 짧은 몇 초의 순간이었습니다.
커다랗게 뜬 내 눈으로 등대를 지나 막 들어오던 배 한척이 뒤에서
덮친 산더미와 같은 파도와 함께 바다 속으로 기울어져 가는 모습이
사진처럼 찍혔습니다.
“아니, 저걸 어떡해. 사람이나 살았으면…….”
사람들이 똑같이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구명
승을 어깨에 메고 등대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배
가 파도에 밀려 항구 밖으로 점점 밀려나가다가 흔적도 없이 시야에
서 사라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에 입을 다물
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치 허수아비가 바람에 넘어지듯 뒤로
쓰러졌습니다.
그렇게 바다 속으로 사라진 배에는 부모님이 타고 있었습니다. 모
든 사람들은 부모님이 파출소장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왜 이 부두로
돌아오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추측하면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 후로, 온 마을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그 날 있었던 일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빛바랜 사진으로 가슴에 담아 두었습
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