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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시-장승진]검은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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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62회 작성일 05-04-0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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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구름이 한참을
깔고 앉아있다 떠난
겨울 산 봉우리
하얗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리 눈부실까?

계속해서 밀려오는 검은 파도
당혹과 분노와 수치감이
묘하게 뒤엉켜 인격을 시험한다.
TV를 끄고 눈을 감는다.

보험금을 타내려 잘라 버린 피묻은 손가락과 발목들이
잠 속까지 밀려든 우그러진 파도 사이를 떠다닌다.
“종말이 다가왔다”세기말의 외침소리가
대지진의 예고처럼 가슴속에 쿵쿵 울리고,
20층 옥상에서 좌절한 사람들이
검은 비닐봉지처럼 떨어져 내렸다.

치약을 듬뿍 묻혀 양치질을 끝내고
세수를 한다. 차라리 모든 걸 벗고
저 꼭대기 겨울나무 끝가지가 되고싶다.
검은 구름 속에서도 눈부시게 태어나는,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요즘 통 잠이 잘 안 온다며

“이젠 갈 때가 됐나봐”
허허 웃으시는
옆집 할아버지 머리도
하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