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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re] [시-서귀옥]아버지는 4벌식 타자기를 두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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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희숙
댓글 0건 조회 2,690회 작성일 06-07-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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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타자기를 찾아냈다
>4벌식 마라톤 타자기다
>버리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아버지는
>붓으로 먼지를 쓸어내고 있다
>실직한 몇 년 사이 부쩍 꼬장해진 아버지의
>집착이다
>“버리세요”
>“이렇게 하면 되지야”
>햇살은 아버지의 이마 위에서
>울퉁불퉁 거친 걸음을 걷다가
>닿는대로 두들겨 보는 손가락 사이에서
>한 떼의 새를 날아 오르게 한다
>스스로는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낡은 고집이다
>활자가 찍힐 때마다
>막 재기한 마라토너의 제스츄어로 몸 푸는
>아버지의 액션
>모음과 자음이 끼리끼리 겹치고 받침이 옆구리에 박히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지만
>한자 한자 체중마저 싣는다
>시간 날 때마다 가르쳐 달라시는 아버지는
>세상 속으로
>미처 날지 못한 어린새를 꺼내 놓는다      




버리지 마세요..
저는 4벌식 타자기로 자격증을 따면서 여상을 졸업했던 사람입니다.
그당시는 취업을 목적으로 열심히 연습했지만..
지금도 가끔, 타자를 두들기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답니다.
제 삶에서 힘들었던 시기였던 만큼.. 또한 가장 기억에 남는 한때이기도 합니다.
두들기는건 고사하고, 한번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