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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시-서귀옥]아버지는 4벌식 타자기를 두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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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13회 작성일 05-04-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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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타자기를 찾아냈다
4벌식 마라톤 타자기다
버리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아버지는
붓으로 먼지를 쓸어내고 있다
실직한 몇 년 사이 부쩍 꼬장해진 아버지의
집착이다
“버리세요”
“이렇게 하면 되지야”
햇살은 아버지의 이마 위에서
울퉁불퉁 거친 걸음을 걷다가
닿는대로 두들겨 보는 손가락 사이에서
한 떼의 새를 날아 오르게 한다
스스로는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낡은 고집이다
활자가 찍힐 때마다
막 재기한 마라토너의 제스츄어로 몸 푸는
아버지의 액션
모음과 자음이 끼리끼리 겹치고 받침이 옆구리에 박히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지만
한자 한자 체중마저 싣는다
시간 날 때마다 가르쳐 달라시는 아버지는
세상 속으로
미처 날지 못한 어린새를 꺼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