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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 여행기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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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헌
댓글 1건 조회 2,136회 작성일 05-12-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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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가슴 저린 노래 ‘모두 다 갔다’

  안해도 갔다. 남편도 갔다. 돈벌러 모두 다 갔다.
  한국에 갔다. 일본에 갔다. 로씨아로 갔다. 모두 다갔다.
  잘사는 거이 뭐이건데 산산이 부서져 그리움에 눈물 흘리며....(이하 생략)
                                           -조선족 가요 ‘모두 다갔다’에서-

  훈춘 국제 가요제에서 내 가슴을 뭉클거리게 했던 노래 가사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아저씨가 부른 노래라 그 아픔이 더 크게 가슴에 와 닿았다.
  노랫말 속에 현재 연변의 우리 조선족이 처해 있는 현실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었다.
  코리언 드림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모두 한국에서, 일본에서 불법 체류자가 되어야 했다.
  몇 년만 고생하면 다른 이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그들은 혹독한 노동조건과 불법체류자는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과의 이별을 택했다.
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무엇일까?
노래 가사를 곰곰이 씹어보면 가슴이 아려 온다.

  이 곳에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또 하나 있다.
  이곳 훈춘에서 7박 8일 동안 나는 초등학교 교사라는 이유로 제 1실험 소학교, 제 1 고중학교
(고등학교), 제 5 초중학교(중학교)를 공식적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그들의 환영리셉션 현장의 정성을 다한 공연이나 인사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즐겁다는 느낌보다 아프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그 이유 모를 아련한 아픔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자유시간에 몇몇 회원들과 방문한  ‘서광 조선족 기숙제 학교’에서였다.
서광 조선족 기숙학교는 교사 22명이 학생 60명을 가르치는 일종의 대안학교였다.
한국에 돈 벌러 갔다가 소식이 끊긴 부모님, 또는 부모님과 연락은 되고 있지만 돌볼 사람이 없는 조선족 아이들을 모아 숙식과 교육을 함께 해결해 주는 기숙학교이다.

폐교된 건물을 임대 받아 교실에 간이 침대를 설치하여 침실로 사용하고, 아이들의 숙식과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당번제로 아이들과 침식을 같이 한다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오로지 한가지 ‘같은 조선족이니까...’ 라는 대답을 들으며 나는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1960년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학교 곳곳을 둘러보다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기숙교실에서 한 아이가 핸드폰을 충전시키는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한 마음에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 핸드폰은 어디서 났으며, 핸드폰 요금은 어떻게 내는지를...
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괜한 호기심 때문에 한 아이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오는 내 눈가가 갑자기 흐려져 왔다.

그 날 호텔방에서 나는 한 편의 시를 썼다.


     기다림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날마다 충전시킵니다.

돈 많이 벌어 오겠다며
한국으로 떠난
엄마가 사주고 간 핸드폰

조금만 더 참아라
우리도 옛말하며 살날 있을 거라던
엄마 목소리가
더 이상 들려 오지 않는 전화기를
아이는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이제
울리지 않는 전화기만이

아이에겐
기다림입니다

엄마에게로 가는
실가닥  같은 희망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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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희님의 댓글

이충희 작성일

  아 아 ... 울리지않는 전화기를 날마다 충전하는  아이의 손이 어른거려 가슴 아프네요.<br />
돈? ... 돌아오지 못하는지 아니 돌아가려는지 ... 그녀도 얼마나 아이가 그립겠는지요. 그 이유를 소상히 알지 못하기에 설마 그럴려고 뭔가 피치못할 사정이 그래요.<br />
그녀의 그 사정이 확 풀려 우ㅖㄴ수놈의 돈 싸들고 돌아가면 그 돈이 쓸모있게 쓰이는<br />
아름다운 날이 오시길 간절히 간절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