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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필 -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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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3,176회 작성일 11-02-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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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제가 좋아하는 시 입니다.
추사 김정희 님의 학문과 예술의 대한 열정을 이근배 님의 시를 통해서 소개 합니다.
설악문우회 회원여러분 갈뫼 독자 여러분 !
문학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신묘년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독필禿筆        - 이근배

끝이 무지러진 몽당붓을 일컫는 독필이라는 낱말은 스스로 글솜씨
를 낮출 때도 쓴다. 나는 어려서 몽당연필에 깍지를 끼워 써보긴 했
어도 한자루의 붓도 닳도록 쓰지 못했다. 그런데 추사秋史가 친구
권동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열 개의 벼루를 갈아 바닥을 내고 천 개
의 붓을 닳도록 썼다“는 글귀를 읽고는 그만 머릿속이 텅 비어옴을
느꼈다. 추사는 그 편지에서 일흔 해를 그토록 써왔어도 “편지 글씨
하나도 못 익혔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고희라는 나이, 나하고는 천
만리나 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도 지척에 다다랐다. 저 추사는
천개의 붓을 다 쓰고도 글씨가 안된다고 했는데 한 자루의 붓도 대
머리禿를 만들지 못한 나는 이제 어떻게 붓을 잡으랴 새로 용산에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세한도’나 한없이 훔쳐볼 작정이
다. 어느덧 날은 차져서 옷벗는 나무들 속에 저 혼자 푸른 소나무 잣
나무를 그리던 그 천 개의 독필이 들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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