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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문학상-심사평 수상자 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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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4건 조회 8,031회 작성일 11-11-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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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산문학상-심사평 수상자   이영춘 시인

                 간절한 인간애로 표현된 우리 시대의 휴머니즘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은 복효근과 이영춘의 시들이었다. 복효근의 시는 따뜻하고 순정한 내면의 서정성을 맑고 청결한 언어로 조립해내는 솜씨가 돋보였고, 이영춘의 시는 삶의 핍진한 장면들을 간절하고 간곡하게 풀어내는 진정성이 감동적이었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제 1회 인산문학상의 권위와 중량에 어울리는 시인과 작품을 추려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고, 그런 의미에서 이영춘 시인의 시 「시간의 저쪽 뒷문」을 수상작으로 결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 시를 읽은 후에 남는 가슴 저린 인간적 갈등과 고뇌는 어느 개인의 몫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다. 이 시인의 또 다른 시 「해, 저 붉은 얼굴」도 같은 계열의 시이면서 깊은 인간적 감동의 울림을 지닌 시다. 아버지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이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의 감정 속에 “쇠못이 되어” 박혀 있다. 이 시 역시 단순한 가족사에 얽힌 추억담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인간애로 표현된 우리 시대의 휴머니즘이다.

 이영춘 시인의 시는 주체와 대상 사이에 일정한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센티멘털리즘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의 시적 형상화는 개인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우리 시대의 전체적 삶의 비극성으로 확대시킨다. 감정에 몰입되지 않고 전경화(前景化)하는 태도가 이 시인의 시가 지닌 탁월한 점이다. 우리는 이영춘 시인의 시에서 진정성을 지닌 시가 어떻게 인간적 감동을 심화하는가를 확인하게 한다.

   

죽염발명가이자 한방암의학 창시자인 인산(仁山) 김일훈 선생의 뜻을 기려 사단법인 우리시(詩)진흥회와 지리산문학관이 공동으로 제정한 제1회 인산문학상 수상자로 평창출신 이영춘(사진) 시인이 선정됐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국내 유명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한 인산문학상은 최종적으로 이영춘 시인의 시 ‘시간의 저쪽 뒷문’ 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시간의 저쪽 뒷문 (수상작품)

 이영춘

 

 어머니 요양원에 맡기고 돌아오던 날

천 길 돌덩이가 가슴을 누른다

“내가 왜 자식이 없냐! 집이 없냐!” 절규 같은 그 목소리

돌아서는 발길에 칭칭 감겨 돌덩이가 되는데

 

한때 푸르르던 날 실타래처럼 풀려

아득한 시간 저쪽 어머니 시간 속으로

내 살처럼 키운 아이들이 나를 밀어 넣는다면

 

아, 아득한 절망 그 절벽……

 

나는 꺽꺽 목 꺾인 짐승으로 운다

 

아, 어찌해야 하나

은빛 바람결들이 은빛 물고기들을 싣고 와

한 트럭 부려놓고 가는 저 언덕배기 집

생의 유폐된 시간의 목숨들을

 

어머니의 시간 저쪽 뒷문이 자꾸

관절 꺾인 무릎으로 나를 끌어당기는데

 

심사위원 : 김광규, 조창환

해, 저 붉은 얼굴

                             이 영 춘

 

아이 하나 낳고 셋방을 살던 그 때

아침 해는 둥그렇게 떠 오르는데

출근하려고 막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데

 

뒤에서 야야! 야야!

아버지 목소리 들린다

 

“저어---너---, 한  삼 십 만 원 읎겠니?”

 

그 말 하려고 엊저녁에 딸네 집에 오신 아버지

밤 새 만석 같은 이 말, 그 한 마디 뱉지 못해

하얗게 몸을 뒤척이시다가

 

해 뜨는 골목길에서 붉은 얼굴 감추시고

천형처럼 무거운 그 말 뱉으셨을 텐데

 

철부지 초년 생, 그 딸

“아부지, 내가 뭔 돈이 있어요?!”

 

싹뚝 무 토막 자르듯 그 한 마디 뱉고 돌아섰던

녹 쓴 철대문 앞 골목길,

 

가난한 골목길의 그 길이 만큼 내가 뱉은 그 말,

아버지 심장에 천 근 쇠못이 되었을 그 말,

오래오래 가슴 속 붉은 강물로 살아

아버지 무덤, 그 봉분까지 치닿고 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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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숙님의 댓글

서미숙 작성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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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만해마을에서 뵜을 때  <br />인사라도 한아름 드렸을 것을요.<br />시가 너무 진솔해서 가슴아파요.<br />이영춘선생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br />늘 옆모습이 쓸쓸하다싶었는데, 정직한 시인이십니다.<br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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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님의 댓글

이영춘 작성일

정영애님, 서미숙님, 돌다가 여기 들렀습니다.<br />오래전에 올린 글이지만 이제라도 답장드립니다.<br />감사합니다. 설악의 문운이 서리서리 내리소서. 이영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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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님의 댓글

이영춘 작성일

아,권정남시인이 이  시와 시평 기사를 올려 놓았군요. 감사합니다.<br />항상 맑고 인상좋은 권시인이지요. 늘 아름다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