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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제1048호 2012년 03월 19일 (월)자 권시인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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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미숙
댓글 3건 조회 2,823회 작성일 12-03-21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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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통곡의 방
 

살아가면서 겪었던 행복하고 기뻤던 일들은 꿈결 같이 지나 가버리지만 가슴 아팠거나 슬펐던 일들은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힘들게 할 때가 많다. 힘들었던 경험도 겪고 나면 주변을 한 번 더 신중하게 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 때론 새로운 삶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지난 겨울 캄보디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도 있지만 낯선 곳에서 또 다른 자신과의 만남이 더 큰 소득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앙코왓을 비롯하여 천 년 전 캄보디아 유적지를 돌아보고 일행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자야브라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타프란 사원을’ 들르게 되었다. 흰구렁이 같은 거대한 스펌나무 뿌리가 사원의 지붕과 담장을 칭칭 감고 있어 크메르 천년 역사가 균열이 가고 부식되어 가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더 크게 와 닿은 것은 자야브라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7평 남짓한 돌로 된 캄캄한 ‘통곡의 방’이었다. 방에는 향이 피워져 있고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왕이 아무 곳에서나 울 수 없었던 시절이라 어머니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을 이 캄캄한 방에서 한 번씩 울음으로 토해냈다고 한다. 이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나라일이 걱정 될 때마다 왕은 혼자서 조용히 어머니를 찾으며 속마음을 털어 놓지 않았나 싶다. 효성이 지극하고 백성들한테도 선정을 베푼 자야 브라만 7세는 천년 전 캄보디아 문화를 꽃피운 왕이라고 한다. 통곡의 방에서 가슴을 치면 한(恨)이 많은 사람은 우우하는 공명이 명치끝에서 울려나온다고 해서 일행은 모두 가슴을 한 번 씩 주먹으로 쳐보곤 했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생(生)을 건너가자면 한 번쯤은 울음의 강(江)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아무런 감정이 없을 것 같은 자연 현상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허공을 향해 해종일 자기 울음을 토하고 있고 영금정 파도도 하루에 수천 번씩 제 몸을 차가운 바위에 때리며 울고 있다. 설악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도 계곡을 돌아 나오며 허공을 물어뜯을 듯이 짐승 우는소리로 들릴 때가 있다. 가끔 사람들도 실컷 울고 싶을 때가 있어 아무도 몰래 수도꼭지 틀어 놓고 울었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간에서 한참을 울고 나면 몸 안에 있던 뜨거운 덩어리가 빠져나가는 듯 속이 후련해지고 혼란 했던 감정이 정제되어가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태풍 루사에 서른의 아들을 산사태로 잃어버린 고모도 그 아들이 기도제목이 되어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가슴에 차오르는 슬픔을 비워내듯 교회 새벽기도 때마다 소리 없이 통곡을 하고 있다. 남편은 8살 때 어머니를 사별했다. 기억 속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시다가 학교에 갔다 온 어린 아들한테 붉은 사과를 한개 주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일전에 대구에 사는 시누이한테 어머님께서 직접 베를 짜서 만드셨다는 작은 무명천 한 조각을 받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어머님 유품으로 어머님 치마폭 한쪽을 잘라낸 천이라고 했다. 어머님을 향한 그리움을 새기듯이 시누이는 흰 무명천 조각에 활짝 핀 홍매화를 붓으로 그려서 넣었다. 낡고 빛바랜 천에 그려진 홍매화는 모녀의 그리움과 정다운 마음이 어우러진 듯 은은하면서도 애잔함이 배어 있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어머님은 그저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만 살아 계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매화그림이 그려진 작은 흰 무명천, 그 옛날 어머님 손때 묻은 흔적을 남편한테 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남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더니 오십 삼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그리움이 봇물로 터진 듯 한참 동안 속울음을 토해 냈다.
오는 3월 26일은 마흔 여섯 명, 눈부신 청춘들이 천안 함에 갇힌 채 천길 물속에 잠긴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벚꽃 잎이 눈꽃처럼 휘날리던 날, 물속에서 아름다운 영혼을 한 명씩 건져 올릴 때 세상의 모든 어미들은 가슴을 뜯었고 온 나라가 ‘통곡의 방’에 갇혀 오열을 했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아픔이 어제 같았는데 이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모든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그 빛깔이 흐려지고 희석이 된다지만 북한의 잔악한 만행으로 희생된 스무 살 귀한 아들들, 그 꽃다운 영혼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가슴 쓰린 3월이다.
 
권정남
시인
2012.03.19 [1048호] / 2012.03.19 10: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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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숙님의 댓글

서미숙 작성일

[살아가면서 겪었던 행복하고 기뻤던 일들은 꿈결 같이 지나 가버리지만 가슴 아팠거나 슬펐던 일들은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힘들게 할 때가 많다. 힘들었던 경험도 겪고 나면 주변을 한 번 더 신중하게 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 때론 새로운 삶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맞아요. 가슴쓰린 생각들을 꺼내어 가끔 혼자 울기도 하고 통곡도 하지만...그렇지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권시인님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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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글을 다 읽고 나니  <br />글을 쓰신 권선생님보다 서미숙씨께 더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br />왜 그럴까요? <br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신 권선생님과 <br />좋은 글 발췌해 주신 서미숙 선생님깨 동시에<br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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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부끄러운 글을 미숙씨가 올려 줬네요 글은 쓰고 나면 늘 찜찜하고 후회가 되지요,<br />설악신문에 실을 글이라 천안함 2주기에 맞추다가보니 초점을 천안함에 맞추어 마무리하고 나니 지면이 한정되어있어 나머지 더  긴내용이 축약이 되었네요. 영애씨 미숙씨 두루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