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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지난 신문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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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미숙
댓글 2건 조회 6,270회 작성일 12-03-21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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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울대 건강하게 해주는 시인이 짓는 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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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에 깔끔하게 담아낸 보리밥 상차림이 정갈하다.
 
 
가난한 시절, 가난한 사람들이 먹어야 했던 슬픈 음식이 하나있다. 싫든 좋든 주면 주는 대로, 먹으라면 먹으라는 대로, 먹어야 했던 음식이다. 미감(味感)은 커녕, 맛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오죽 질리도록 먹었으면 농장의 하인들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이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파업까지 벌였을까. 바로 랍스터(Lobster)라 부르는 ‘바닷가재’이다.
세계 3대진미로 손꼽는 송로버섯, 거위 간, 철갑상어알과 함께, 지금은 세계적인 음식 요리의 값비싼 재료가 된 랍스터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가난한 집이나 하인, 심지어 죄수들까지 질리도록 먹어야 했던 값싸고 흔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랍스터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까지만 해도 미국의 빈곤을 상징하던 가난한 음식이었다.
 
한정식 상차림 같은 보리밥상

우리 음식 중에서도 랍스터 같은 음식이 있다. 꾸역꾸역 먹어서라도 굶주림만 면할 수 있어도 만족스럽던 ‘보리밥’이다. 서양 음식 랍스터 처럼, 너 댓 식구들의 가난한 뱃속을 질리도록 채워주던 음식으로, 이마저 궁할 때는 채 영글지도 않은 시퍼런 보리로 죽을 쑤어 먹을 정도였으니, 보리밥 역시 한때 우리가 먹었던 가난한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 가난했던 집의 아이들이 거무튀튀한 보리밥 한 그릇을 퍼 담은 구박에 머리를 맞대고, 숟가락질 다툼을 해대던 가난한 음식, 보리밥이 이제는 목울대를 건강하게 챙겨주는 부자음식이 되어 버렸다.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위치한 그리운 보리밥(T.635-0986)집은, 속초에서 가장 궁극적인 보리밥집이 아닐까 싶은 곳이다. 막국수, 냉면 값 보다 못한 가격이지만, 질그릇에 깔끔하게 담아내면서 맛까지 탓할 게 없어 보이는 보리밥 메뉴가 고작 6,000원이다. 소박한 보리밥상이 아니라 잘 차려진 한정식 상차림 같다. 음식대비 가격을 따지든, 가격대비 음식의 종류나 맛을 따지든, 몇 천원짜리 보리밥집 치고는 고마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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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기도 한 주인 이정여씨는 옛방식대로 보리밥을 8년째 짓고 있다.

고등어 한 점 올려 먹는 입맛의 긴장감

하루 평균 100여명의 손님이 찾는 이곳 주인 이진여씨는 설악 시낭송회 ‘풀니음’에서 시 낭송공연 활동까지 하고 있는 문예인으로 ‘보리밥 시인’으로 불린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이씨는 가난해서 보리밥을 먹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보리밥 냄새가 좋아 시작한 보리밥집을 8년째 꾸려가면서 제대로 무치고, 조리고, 갓 지은 보리밥상을 차려 준다. 흔한 테이블 대신 집에서 쓰는 짙은 자주색의 칠기 밥상에 보리, 쌀, 찹쌀, 율무, 콩을 넣고 끓인 곡물 차부터 내다 주면서, 옛 방식대로 먼저 지은 보리밥 위에 불린 쌀을 얹고 한 번 더 밥을 지어내는 보리밥은 고들고들하게 톡톡 씹히는 식감이 씹을수록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맛이다.
상큼한 상추 겉절이, 다래순 무침, 표고버섯무침, 콩나물을 얹은 보리밥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양껏 두르고 숟가락으로 썩썩 비빔을 해놓은 후, 그릴에 구운 고등어 한 점 올려 먹는 입맛의 긴장감이 흡족하다. 애호박을 썰어 넣고 끓인 된장찌개 맛도 무겁지 않게 삼삼해서 명태조림, 무생채, 열무김치, 계란말이부터 욕심내면서 먹을 일도 아닐 만큼 제법 근사하게 차려내는 보리밥집의 부자음식이다. 더욱이 외국인들까지 단골로 드나들고 있다 하니, 제 음식의 고유한 맛이나 모양새까지 서구화시켜 가며 한식 세계화에 열을 올리기보다, “쌀보리~ 쌀보리”하며 쌀을 잡기위해 안간힘을 다하던 가난의 정서가 음식놀이로까지 지혜로 남아 있는 보리밥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곳 보리밥집이다.     
 
<시민기자>

2011.07.18 [1016호] / 2011.07.18 13:11 수정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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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숙님의 댓글

서미숙 작성일

괜시리 아는 사람이 나오니 반가워서 올려봅니다. 그래도 자주 가는 집이라...반갑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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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몰랐네요.<br />이런 기사가 있었는줄은.<br />활짝 웃는 모습이 행복해보입니다.<br />개량 한복이 정말 잘 어울리는 경상도 아줌마 시인.<br />빨리 갈뫼의 식구가 되길...<br />진여씨. 기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