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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모시고 사는 시대 /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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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2,936회 작성일 13-01-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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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강원 도민일보에 실린 글입니다/

 

 

귀신을 모시고 사는 시대 / 이상국

  

 

  언젠가 식당에서 본 광경이다. 중년의 부부가 아들딸과 함께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었다. 모처럼의 즐거운 외식일 텐데 부인 혼자 멀뚱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안 돼 보였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을 귀신같다거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거나 혹은 귀신을 속이지 누굴 속이냐, 라는 말을 한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능력을 가졌거나 뭔가 신기하고 기묘하여 그 속을 알 수 없을 때 하는 말들이다. 귀신이란 무엇인가. 귀신은 천지간에 무소부재하고 모르는 게 없고 맘만 먹으면 못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인간의 화복에 관계하는 두려운 존재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여러 귀신과 같이 살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신기한 귀신은 스마트폰이다. 그 속에는 전화기, 카메라, 팩스, 녹음기, 타자기, 전신전화국, 영화관, 도서관, 박물관, 은행, 축지법 귀신인 내비게이션을 비롯하여 지구전체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인터넷이 통째 들어있고 보면 스마폰이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자 무서운 귀신이라는 말 외는 대신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것의 진화는 아직 끝이 안 보인다.

    딸애가 외국으로 연수를 간 적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애를 못 보겠구나 하고 내심 상심했었는데 도착해 자리를 잡자마자 인터넷 동영상으로 저녁마다 제 엄마와 통화하는 걸 보았다. 일테면 귀신이 곡할 노릇을 실제 겪으면서도 나는 그 기능에 반신반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당기간이 지나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애가 외국에 갔다 왔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모스크바에 있는 남편이든 호주로 간 아들이건 보려고 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건 보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귀신만이 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인간의 일상이 되어 귀신의 영역이나 인간의 영역이 따로 없게 된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연애하는 남녀건 부부사이든 휴대폰 때문에 오해를 받거나 난처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정확하게 기록하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은 인간을 편하게 하고 그 활동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기능을 하지만 한편 인간 사고를 기계화하고 지적영역을 위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이란 언제나 청천 백일하에 부끄러움 없이 사는 동물이 아니다. 때로는 큰소리로 울고 싶고 때로는 숨고 싶고 때로는 불가피하게 죄를 짓기도 한다. 그들은 자연과 대중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무수한 익명의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밖을 나선 사람들의 동선은 밤낮없이 녹화되며 누구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끊임없이 저장되며 돈은 어디다 썼는지 정확하게 찍힌다. 우리가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것들에게서 놓여날 방법이 없다. 그것은 통제와 감시의 기능으로 회사가 사원을, 국가가 국민을, 혹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마을에 TV가 몇 대 없었을 때 연속극을 보려고 이웃집 마당이 사람들로 가득하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불과 수십 년 전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인 과학기술의 진보는 대중을 오히려 소외시키기도 한다. 걸어서 금강산 구경을 가고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과거보러 가던 선대가 우리보다 불행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보다는 기능이 앞서는 시대다. 언제부턴가 나는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켜야만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다. 손가락이 머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어쩌다 아내와 자식들의 전화번호를 전혀 기억 못해 당황하거나 이제는 노래방 아니고는 일절이라도 제대로 부르는 노래가 없다. 인간이라는 게 원래 귀신을 속일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다. 그래도 옛 귀신에게는 일 년에 한 두 차례 날 받아 위해주면 별 탈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판 기계귀신에게는 끊임없이 재물을 바쳐야 하는데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 집에서도 그 귀신을 넷이나 모시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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