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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혁명 / 박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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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4건 조회 4,038회 작성일 13-01-2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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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혁명

 

                                   박 소희

 

눈은 언제나 조용히 온다.

많이 올수록 더욱 조용히 치밀하게 온다.

무엇이 됐든 순결하게 되돌릴 수 있을 듯

조용한 눈빛의 눈부신 몸으로 온다.

 

그 은빛 몸에

검은 삽날이 꽂혀도

눈은 결코 붉은 피 흘리지 않는다.

거대하고 번뜩이는 아가리의 기계가 온몸을 집어삼켜도

눈은 조용히 저항하지 않는다.

온정신을 녹여 없애는 염화칼슘을 퍼부어도

눈은 절대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다.

햇빛이 뜨거운 물을 끼얹어도

눈은 조용히 눈물 흘릴지언정 비명 지르지 않는다.

 

자신도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위험한 바퀴들이 헛돌게 하고

누군가를 자신의 사막에 고립시키고

누군가의 희망을 비닐하우스처럼 주저앉히면서

그 누군가의 마지막 검은 비명을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산의 나무를 쓰러뜨리면서

수 백 년 버틴 나무의 뼈들이

한순간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누군가의 힘이 될 양식을 위해

자신의 뜨거운 몸 아래, 밀이 있다면, 하고,

아무리, 푸른 밀밭을, 꿈꾸었어도,

늘 배고파 죽어가는 텅 비고 흰, 조용한,

누군가의 한줄기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또, 다시, 봄을

눈은 또, 조용히, 겨울을

들이댄다.

거울처럼, 소리 없는 재앙을 반사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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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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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만님의 댓글

김춘만 작성일

아침에 좋은 시 한 편 감상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온라인상에서나마 회원님들의 근황을 알 수 있어 반갑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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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님의 댓글

김향숙 작성일

.<br />---검은 삽날이 꽂혀도 / 눈은 결코 붉은 피 흘리지 않는다---<br /><br />단호한 순결의 상징으로 고요하게 내리던 눈의 마음이 그랬던가요.<br />눈雪의 눈目에서 세상의 비명들은 눈물로 녹아내리던가요.<br /><br />창 밖 들녘 흰 눈 가득합니다.<br />아침햇살에 반사되는 눈의 아름다움 안에 감춰진 <br />처절하고도 치열한 맥박뛰는 소리 요란하게 들려옵니다.<br /><br />고맙습니다.<br />좋은 시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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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김향숙시인 눈 풍경 사진 보다가 몇해전에본 시가 생각이 나서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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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자님의 댓글

박명자 작성일

나무의뼈들이 부서지는 모습<br /><br />이 테마는 언제나 내가 드나들던 아이디어입니다  나에게 &lt;나무&gt;는 인격이며 추상속에 있는<br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