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정다혜
겨우내 저 혼자서만 웅크리고 살던 빈집
녹슬어버린 펌프는 녹슨 느낌표로 서 있다
안부를 묻지 않고 지내는 동안
우물가의 푸른 이끼들 누렇게 말라버렸다
오래되었거나, 잊어버린 저 문장부호들
읽기 힘든 낡은 세월의 문장이여
펌프에 마중물 먹이고 손잡이 잡고 누른다
처음 펜을 잡던 손의 설렘을 나는 기억한다
그렇다, 아름다운 첫 문장은 손이 먼저 아는 것
차가운 내 손에 피가 돌기 시작한다
꽃 피고 지고 다시 피는 사이
저도 꽃길 열고 싶었던 물의 침묵이
펌프 속에 갇힌 짐승처럼 괴성을 내지른다
아무도 받아 적을 수 없는 붉은 모음이
뻘건 녹물에 녹아 흘러나온다
땅속 깊은 곳의 말 다 쏟아내기 위해
내 마음에 묻힌 말 다 쏟아내기 위해
나는 더욱 힘껏 펌프질을 한다
갇혔던 슬픔이 다 쏟아져 나온 뒤
맑은 노래는 찾아올 것이다, 나는 지금
가장 맑은 물의 고백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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