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은 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 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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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은 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조 원
나비를 보지 못했다
나비는 어디 있는가
여기는 온통 겨울이라서
뒹굴지 않으면 흩어지는 눈발이라서
나는 꽁꽁 언 눈사람이라서
전지전능한 장갑에게
묻는다. 검은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눈사람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몸집을 더 크게 지어달라고
눈에 눈을 묻혀
냉각된 슬픔의 분말을 쌓고 쌓으면서
기도 올린다. 내 몸을 다지고 두드리는 손바닥에게
두 개의 단추 구멍 사이로
나비를 보게 해 달라고
그대는 알고 있을까
눈사람은 겨울이 만들어 낸 허상이란 걸
결빙의 마음으로 세상을 굴러도
결국 종말을 볼 수밖에 없는 사람
눈<雪>은 눈물로 존재할 수 있다
설경은 바다로 흘러갈 수 있다
그대는 왜,
슬픔의 성분으로 사람을 만들어
꽃을 가로막는가.
탁자에게서 나무를 빼내고
담벼락에게서 돌을 빼내고
결빙의 사람에게서 눈물을 빼내어
나, 무지로 돌아가고 싶네
그대 두 손으로
어설픈 설체<雪體>를 지으셨다면
내 황홀한 임종을 위해
나비를 만들어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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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가슴 서늘 해져옵니다. 외눈 박이 처럼 한쪽 보고 견뎌야 하는 결빙 된 허상의 슬픈 생에----<br />정말 좋은 시 잘 감상 했습니다. <br /><br />회원님들이나 독자님들께서도 혹여 좋은시를 만나시거든 게시판에 올려 주세요. 모두 함께 공감하며 감상 할수 있으면 행복이 바이러스처럼 모두에게 전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