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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그림책으로 여는 세상 이야기 10 (하얀 늑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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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헌
댓글 0건 조회 415회 작성일 23-02-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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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여는 세상 이야기 10 하얀 늑대처럼

 

이번에 이야기 나눌 그림책은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프랑스 그림책 작가, 에릭 바튀의 하얀 늑대처럼이다. 간결한 글과 빨강과 검정의 색채 대비가 강렬한 그림을 통해 의인화된 독재자 토끼의 횡포와 그 끝을 보여 줌으로써, 평화와 공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림책을 펼치면 키가 크고 기다란 수염에 번득이는 새빨간 눈을 가진 하얀 토끼가 등장한다. 마을 잔치에 불쑥 나타난 이 하얀 토끼는 일렬로 길게 놓인 식탁 끝에 주인처럼 앉아 자기 쪽으로 식탁보를 홱 잡아당겨서 음식을 혼자 먹어 버린다. 그렇게 마을의 권력을 힘으로 차지한 하얀 토끼는 다음 날부터 마을이 좁다는이유로 키가 작고, 수염이 짧고, 털이 하얗지 않은, 즉 자신과 다르게 생긴 토끼들을 쫓아내기 시작한다. 힘없는 토끼들은 하얀 토끼의 횡포를 말없이 따른다. 키가 커서, 수염이 길어서, 털이 하얘서 다행이라며, 쫓겨나지 않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마을에서 쫓겨나고, 하얀 토끼 혼자만 남게 된다.

스스로 위대한 토끼라는 생각에 빠져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던 하얀 토끼는 키가 크고 기다란 수염에 번득이는 새빨간 눈을 가진 또 다른 하얀 토끼(?)가 마을에 찾아오자 극진한 대접을 한다. 그런데 그 손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식탁보를 홱 잡아당긴다. 남은 건 쓰러진 의자와 손대지 않은 당근 두 개뿐…….

다른 토끼들이 다 쫓겨날 때, 작은 몸을 숨긴 덕분에 이 모든 걸 지켜본 점박이 토끼는 쫓겨난 토끼들을 다시 마을로 불러들이고 다 함께 잔치를 벌인다. 차별과 편견 때문에 불행한 일을 겪은 토끼들은 일렬로 놓았던 식탁을 둥글게 이어 붙인다, 그리고 맛있는 풀, 맛없는 풀을 가리지 않고 다 함께 나누어 먹는다.

 

이 그림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넘기다 보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와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그리고 보스니아 내전의 인종 청소가 떠오른다, 작가 에릭 바튀는 실제로 보스니아 내전에서 이 책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인류사의 재앙은 그릇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책의 키워드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하얀 토끼의 거만하고 당당한 자세로 상징되는 편견과 힘을 가진 자이다. 두 번째는 두려움이 가득한 토끼들의 시선으로 상징되는 힘 없는 자이다. 그리고 마지막 키워드는, 하얀 늑대가 하얀 토끼를 먹어 치우고 떠난 텅 빈 탁자이다.

공동체의 생존과 평화를 해치는 가장 위험한 요소는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놓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것이다.

이 그림책은 다양한 토끼들이 어울려 사는 토끼 마을에서 자신과 닮지 않은 토끼들을 하나씩 몰아내던 하얀 토끼가 결국 자신보다 더 강한 하얀 늑대에 의해 무너지고 마는 과정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 생김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폭넓게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서로 배척하지 않고 어울려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 그림책을 읽는 내내 필자는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악순환과정과 그림책의 내용이 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사자성어가 자꾸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림책에 나오는 점박이 토끼같은 필자가 바라건데, 우리 지역만이라도 네모난 탁자가 아니라 원탁에 앉아 다 같이 도란도란 나누어 먹는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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