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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신문 칼럼 : 시(詩)로 풀어보는 시(時)시(市)한 이야기 15 – 중간이라는 말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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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헌
댓글 0건 조회 284회 작성일 23-05-0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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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풀어보는 시(時)시(市)한 이야기 15 

                                    – 중간이라는 말에 모였다 


중간이라는 말에 모였다/ 이서화
중간은 쉽게 도출된다/ 쉽게 뭉쳐지고 수월하게 흩어진다/
각자 끌고 온 거리를 버리는 일은/ 늘 중간에서 일어난다//
다 같이 앞으로, 달려온 곳이/ 중간이라면/ 그보다 더 긍정적일 수 없다//
우리는 모여서/ 앞과 뒤를 이야기했다/ 소리에도 중간이 있다면 고요가 앞일 것이다/
누구는 옆으로 끼어들었지만/ 금방 앞이나 뒤가 되었다/ 누구는 앞을 목전에 두고/
또 누구는 뒤에 퇴로를 두고 있지만/ 중간이라는 말에 모여선 하나같이/ 저 뒤쪽에 숨겨 놓고 있다// 우리는 모여서 중간을 나누었지만/ 깜빡하고 중간을 두고 간 사람과/ 제 것인 양 들고 간 사람을 흉보기 바빴다// 앞으로 달려온 중간에서 각자 뒤돌아갔다/ 그곳 또한 각자에겐 앞이었다/ 앞은 어디를 향해도 앞이었고/ 또 어디에도 있었다//

 요즘 어디를 가도 ‘죽겠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들은 재료값이 너무 올라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고 투덜댄다. 그렇다고 값을 올리자니, 가뜩이나 줄어든 손님마저 떨어질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고 울상이다. 수입은 줄어드는데, 전기료, 가스비 모두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하니 월말이 가까워지면 가슴이 울렁거려 잠을 설치는 날이 더 많아 가게를 접을까 말까 고민이란다. 
 퇴직 후, 연금 하나가 유일한 친구들은 어디 가기가 겁난다고 투덜댄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자니 커피값이 무섭고, 친구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는 낙으로 살던 친구들은 모임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구시렁댔다.    
 며칠 전 나간 동창회에서 제일 많이 오고 간 이야기가 노년의 여가생활에 대한 이야기였다.   슬프게도 돈이 적게 드는 영랑호 걷기, 청대산과 설악산 오르기, 파크 골프가 주제어로 자리 잡았다. 그마저도 힘든 친구들은 막장 드라마나, 먹방과 트로트가 판치는 TV 앞에서 방콕을 할 수밖에 없다.
 평범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바라는 삶은 누구나 앞이거나 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냉혹해서 앞이 되거나, 위가 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부가 세습화되고, 권력이 세습화되는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진 지금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 필자같이 어정쩡한 중간에 자리 잡은 서민들은 ‘조금 더 나아지는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어제까지 열심히 살아왔고, 오늘 또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 ‘중간에 자리 잡았다고 스스로 위안하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어야 필요조건인 국가 시스템이 몇 년째 헛발질만 해대고 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통장에 찍힌 대출금 이자액은 가슴을 철렁이게 하고, 월말이면 날아드는 공과금 고지서는 혈압 수치를 바짝 올라가게 만든다. 그런데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에서는 말로만 ‘국민과 민생을’ 위해서라고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있다.
 진정 국민과 민생을 위한 법안들은 논의의 장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폐기되는 일이 다반사고, 그들은 ‘내일의 권력’을 위해 좌와 우로 나뉘어 패싸움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이 모두 우리 같이 힘없는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입술에 침도 안 바른 거짓말을 버젓이 하고 있다.
 이제 ‘우리 같은 중간’은 위로 올라가겠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다. 그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이 중간에 남아 있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힘을 가진 그대들이여! 좌와 우를 이젠 그만 따지고, 진정 그대들도 ‘중간에 모여’ ‘국민과 민생’을 가운데 두고 머리 좀 맞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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