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老) 생물학자의 주례사 / 이가림 오늘 새로이 인생의 첫 걸음을 내딛는 신랑과 신부에게/ 내가 평생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기생충을 들여다 본 학자로서/ 짧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말미잘이 소라게에게 기생하듯이/ 그렇게 상리공생(相利共生)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개미와 진딧물, 콩과 뿌리혹박테리아/ 그런 사이 만큼만 사랑을 해도 아주 성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해삼과 숨이고기처럼 한쪽만 도움받고 이익을 보는/ 편리공생(片利共生)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의 밥이 되는 아름다운 기생충이 되세요/ 이상……// 매주 목요일 저녁 일곱시면 글쓰기에 관심 있는 몇 사람이 문우당 2층에 모여 글쓰기 공부를 한다. 지난주, 글쓰기 교재인 이가림 시인의 ‘어느 노(老) 생물학자의 주례사’라는 시를 만났다. 제목 그대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젊은 부부에게 사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주례사가 한 편의 시로 만들어졌다. 필자는 시의 전체적 메시지를 관통하는 어휘, 공생(共生)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공생(共生)이라는 단어를 나무위키에서 검색했다. 공생- 둘 이상의 생물이 서로 간에 상생을 위해 협력하는 것.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상리공생(相利共生) - 쌍방의 생물이 둘 다 이 관계에서 서로 이익을 얻을 경우. 둘째, 편리공생(片利共生) - 한쪽만 이익을 얻고, 다른 한쪽은 아무 영향 없는 경우. 셋째, 기생(寄生) - 기생물만 이익을 얻고, 숙주는 피해를 입는 경우. 그 외에도 세부적으로 운반 공생과 더부살이 공생 등이 있다. 구체적 예를 들면, 말미잘이 집게의 소라 껍데기에 붙어 이동의 편리성을 얻는 대신, 집게의 천적을 견제해주는 말미잘과 집게의 경우를 ‘상리공생’이라고 한다. 개미와 진딧물의 관계, 청소놀래기와 거대 어류의 관계도 ‘상리공생’이다. 꿀 길잡이 새는 벌꿀오소리를 따라다니다가, 오소리가 벌꿀 집을 사냥해서 먹다 남긴 벌집(밀랍)과 꿀, 애벌레를 먹는다. 이런 관계를 ‘편리공생’이라 한다. 이에 반해, 진드기, 연가시, 장내 기생충같이 숙주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은 이익을 얻어 살아가는 관계를 ‘기생(寄生)’이라 한다. 보통의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경우는 편리공생과 기생이다.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도 하나의 생태계로 볼 때, 편리공생과 기생의 사례가 더 많아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생태계의 생리로 이해한다. 단지 그 보이는 편리공생(부당이득)과 기생의 정도가 지나치게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을 ‘부화기생(brood parasitism)’이라 한다. 요즘 우리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영아살해와 버려지는 아이들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 단어가 떠오른다. 기생의 또 다른 사례로, 몇몇 개미가 다른 종의 개미들을 노예로 부리는 관계를 사회기생(social parasitism)이라고 한다. 사유화된 대기업은 점점 비대해지고 서민의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지는 지금의 현실을 볼 때, 그들은 우리를 그저 노예 개미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하나는 암컷이 숙주 몸에 알을 낳고,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숙주를 잡아먹는 경우를 포식기생(捕食寄生)이라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생태계가 그렇다. 우리 인간 생태계가 다른 종의 생태계보다 조금 나은 점이 소통과 공감의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사는 세상에서 ‘상리공생(相利共生)’의 관계가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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