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발견 / 이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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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을 열고 나오는 저수지의 물은 파죽이다
제 안에 침잠하던 고요가 사자후처럼
기세를 내뿜는 사이 난간에 피워내는 물꽃
울음의 형식으로
폭죽의 형식으로
폐부가 이렇다는 듯 고요를 쏟아 꽃 피워낸 물의 사연을
새끼줄 같은 내력으로 잇고 가는 강,
말은 애초에 미약해서
도리 없이 침묵을 택했던 것이다
귀의 입으로 소리를 삼키며 천천히 몸속에서 숙성한 말들은
뼈에서 가져온 듯 밀밀해져 마침내
다물어진 관자놀이로 온점을 찍고 나온 듯
침묵 끝에서 울음이 되고 폭죽이 되고
괄호에 묶인 말의 통로는
활주로처럼 단단한 육질의 언어가 되었다
씨앗으로 파종하여 꽃처럼 피워낸 말이
침묵의 갈피에서 가져온 문장이었던 것이다
―『시와 정신』(2013.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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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galmoe님의 댓글
galmoe 작성일<p> 치밀한 시인의 관찰의 눈빛 --- 시의 뼈가 단단히 만져 집니다. 권정남</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