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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 허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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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명선
댓글 3건 조회 3,435회 작성일 13-08-01 21:44

본문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나뭇가지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 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을 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했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 가고 있었다 

 

                     —《시작》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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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 1966년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나쁜 소년이 서 있다』『내가 원하는 천사』.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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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moe님의 댓글

galmoe 작성일

<p>좋은 글 올리시느라고 애썼습니다.-김춘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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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p>내가 누르고 있는 마우스도 오래 전에 한 마리 쥐였을 것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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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moe님의 댓글

galmoe 작성일

<p>가슴저리는 시네요. 영애씨 역시 기발한 발상을 하시는 군요------ </p>
<p>김춘만 고문님께서도 평소에 좋아하시는 글 있으시면 좀 올려 시와요.&nbsp; 정남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