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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란 무엇인가 / 정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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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2,946회 작성일 13-08-0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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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이란 무엇인가 / 정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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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는 엘리옷의 말과 같이 문학에 대하여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쉽사리 해명할 수 없는 그것이 바로 문학의 문학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정의는 작품을 그 자체로 논하느냐(존재론), 우주와 관련 짓느냐(모방론), 문인과 관련짓느냐(표현론), 독자와 관련짓느냐(효용론)에 따라 문학의 논의의 양상이 다르게 된다.

 

(1) 문학은 언어를 매개물로 하는 언어예술이다.

문학은 언어를 효과적으로 구성하여 이루어지는 예술이다. 때문에 언어가 그 생명을 이룬다. 문학의 언어와 일상어를 구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일상어가 언어를 지시적으로 사용하는 데 대해 시는 언어를 함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시적이란 사전적인 뜻을 말하고 함축적인 것은 그 언어가 풍기는 분위기, 암시, 연상과 상징성 등을 뜻한다. 문학적 언어와 일상어의 차이는 문학적 언어가 언어의 일상적 · 관습적 표현을 탈피하여 새롭게 창조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사전적인 개념적 의미보다는 내포적 의미의 함축적 언어를 더 중요시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가. 문학은 객관적 진리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을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다.

 

(2) 문학은 허구로 되어 있다.

허구란 작가가 자신의 머리 속에서 상상에 의하여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현실세계와 다른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현실세계라고 할 수 있다. 거짓의 세계이면서도 참말 같은 진실이 그 내용이 되어야 한다. 역사는 있었던 일만을 기록하고 문학은 있을 법한 일을 기록한다. 허구의 세계는 실제세계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지고 문학이 허구라는 말은 문학이 모방이며, 동시에 창조라는 것을 뜻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를 인간행위들의 모방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모방지라는 말을 재현과 비슷한 뜻으로 썼다. 예술은 자연의 복사로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형태의 변조 내지 그것의 새로운 형상화일 수 있는 고유한 법칙성을 띤 재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예술은 모방이라 규정하고,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며, 본능의 만족은 즐거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때문에 문학의 허구성은 사실성의 새로운 모습이며, 생명적 조직을 가진 유기체의 한 모방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작품을 통하여 비현실적, 가상적 대상물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가상의 창조이다. 따라서 문학에서의 허구는 현실의 복사가 아니라 보다 나은 이상향의 구축으로 출발해야 한다. 가상과 실재가 접합되는 순간에 하나의 새로운 이상향이 생성된다. 현재에는 없지만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것을 설계하거나 있다손 치더라도 앞으로 딴 모습으로 바뀌어지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소망을 보여준다.

 

(3) 문학은 작가의 상상과 감정을 독자에게 호소하고 감동시키는 것이다.

상상력은 예술 소는 문학을 창조하는 근원적 능력이다. 시는 과학적 진실과 다른 아름다움이며, 그 아름다움은 사물이 아니라 상상된 것 속에 있다고 규정한 것은 낭만파 시인들이다. 정서가 아무리 고상하다 하더라도 그 고상한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상상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학에 있어서의 상상은 과거의 체험에 이미지를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그 창조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열정적인 감정의 확산이 어떻게 독자에게 영향되어지는가에 대한 독자반응이 오늘 현대의 문학감상에는 중요한 일이다. 문학이란 작가와 작품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응하고 있는 독자의 중요성이 더욱 의미로운 것이다. 야누스는 "독자란 문학작품의 일차적 조건인 수취인으로서 문학사내에서 빠뜨릴 수 없는 존재"이며 "작가-작품-독자의 삼각관계에서 독자는 수동적인 대상이나 단순한 연쇄반응이 아니라 역사를 형성하는 원동력"이라고 하였다. "작품은 독자의 독서행위를 통해서 형성된다"는 사르트르의 독자론은 그 만큼 그 동안 소홀하게 취급하였던 수용가인 독자에게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켜 준 것이다. 대다수의 독자 또는 관객은 오늘날에 와선 오히려 작가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작가는 독자 또는 관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집보다 시의 입문서가 고객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시의 패배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해설이 없으면 소설이 읽히지 못하고 시집이 읽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작가나 시인의 행방불명을 의미한다. 예술은 발송인에서 수취인으로 일방적으로 보내지는 소포같은 것은 아니다. 감정의 통과작용이다. 때문에 일방통행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의 울림이 없는 작품이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4) 전문적 형식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비전문적인 일반적 형식으로 표현하여 일반인에게 쉽게 이해시키는 일이다.

이 때 그 형식은 문학형식에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예술적으로 표현한 창조활동이어야 한다. 문학의 형식은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구체적 작품을 형성하는 요소이다. 문학의 내용과 형식은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구분되지 않으나 이를 편의상 구별하는 경우에는 목적(내용)에 대한 방법(형식)이라는 개념상 구별과 외곽형체의 구별이 있다. 문학의 형식은 문학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결정해 준다. 문학의 사상성이 문학의 진실성을 결정해 준다면 형식은 예술성, 즉 아름다움을 결정해 준다.

 

(5) 독자에게 미적만족인 쾌락을 주어야 한다.

왜 글을 읽는가. 소설을 읽으며 시를 낭송하는가.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 황폐한 나의 정신에 즐거움과 함께 영혼의 생동감을 위하여 그것들은 필요하다. 또한 작품을 통하여 재생적 체험과 함께 모델로서의 삶을 인식하고 나의 삶과 우리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배고프고, 기다려지는 확정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더라도 문학은 나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건져 올리는 재생적 생명이며 사랑이다. 미적만족인 쾌락은 소박한 우리들의 바람이다. 적어도 이 부분을 해결해 주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문학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사는 법과 사랑하는 법, 그리고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가의 인연들을 가르치며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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