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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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남
인형을 껴안고, 먼로는 죽었다
엄마처럼 아가야, 라고 그 자신에게
말하며 죽었다 이사를 가고 싶다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이사를 가고 싶다고
말하더니 죽었다 죽은 그날은 전화 줄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의 전화번호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가슴에는 늘 아가야, 부르던 인형인 그 자신만 있었다
안개는 늘 혼자인 알몸, 그는 안개로 흩어져 있거나
하얀 시트에 싸여 내게 왔다
나는 그때 너무 슬퍼서 목욕탕인 줄도 모르고
허둥지둥 물 묻은 손으로 그의 시집*을 찾아
너무 슬픈 나머지 아주 큰 소리로 울며 그를
읽었다 끼얹는 물소리처럼 그의 시는 그제야
날개를 달고 시원하게 달려왔다
그는 어머니를 목청껏 불렀다
탕 안의 물은 자꾸 넘쳐 나서 세상의 어머니께로 흘렀다
아가야, 아가야, 이제 자는 거야, 아주 깊이 잠드는 거야,
그는 잘 자고 일어나서 방긋 웃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증명이 되었다
나는 그의 걸음걸이와 춤을 읽는다
그의 외출, 그의 까맣게 빛나는 유선형 자가용을 읽는다
그는 거기 있지 않았다 그는 애기였으니, 늘 혼자인 그는
밥도 굶고 수면제를 털어 넣었으니, 늘 사진 찍으면서
사진 찍고 화장하기를 싫어했으니, 늘 나직이
어머니를 부르며 시를 적었는데
어머니는 오지 않고 아버지가 왔다
벌써 그의 아홉 살에 그를 강간한 아버지가 왔다
아버지는 늦은 밤에 서 있었다 술 취한 그의 몸,
그의 흥얼거림을 부축하고, 토사물을 걸레질하고,
그를 뜨겁게 안아주었지만
그의 많은 아버지는 늘 하느님처럼 꾸짖고
그에게 날개 달아 하늘에 둥둥 띄워 추락시키고 있었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오지 않고 내가 큰 소리로 시를 읽다가
목욕탕 속에서 책을 떨구듯이 순식간에 그는 갔으니,
전화 줄을 들고 누구에게로 가고 싶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로 그의 아름다운 몸은 안개 속으로
추락해서 영원한 안식인 어머니 품에 안겼다
* 마릴린 먼로는 실제 시를 썼으며, 그의 시는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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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p>'노마 진 모튼슨'이 실명인 마릴린 먼로.</p>
<p>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나 영화배우고 성공하였으나</p>
<p>37살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기일이 마침 8월5일입니다.</p>
<p>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인가요?</p>
<p>먼로가 보고 싶네요.^^</p>
<p>좋은시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