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 /정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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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정혜숙
잔설 위에 펼쳐진
꽃들의 반야경
살얼음 묻어 있는 겉장을 열어 보다
서늘한 몇 줄 발문에
나 그만 휘청이다
저 꽃의 문하에
잠시 들 수 있다면
겨운 문장의 비밀 취할 수 있다면……
내 생의 남은 수사는
생략해도 좋겠다
정혜숙 시조집 『흰 그늘 아래 』,《동학사》에서
복수초는 나무잎이 피기 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잔설 속에서 꽃을 피운다. 어쩌면 그 마음의 열정이 내일이 오지 않을 그런 기세다. 그런 복수초를 정혜숙 시인은 바라보며 그 문하에 들어 꽃을 피우는 마음을 배우고자 한다. 세상사 어느 높이도 낮은 거리도 없다. 아름다움을 향한 일념의 노력이면 그만하다는 생각이다. 이 세상 그 무엇이 아름다우보다 더한 고귀함이 있을까. 사랑도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이고, 불꽃도 아름다움을 향한 빛이다. 복수초가 피는 것도 제 아름다움의 완성을 이루려는 것일 것이다. 시인은 "내 생의 남은 수사는 생략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복수초 속의 아름다운 여운에 잠긴다.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 문하로 들겠다는 마음, 그 순수가 세상을 배우는 또 다른 공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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