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title05.gif

편자의 시간 / 임동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3,110회 작성일 13-09-24 12:08

본문

편자의 시간

                             임동윤

 

    저 팔뚝에 물결치는 것은 구릿빛파도다

불편한 길은 쉽게 평정해야한다는 듯

사내의 구릿빛 팔뚝이 바람을 가른다

쇠망치가 허공을 후려칠 때마다

갈기를 늘어뜨린 말들이 화들짝 깨어난다

금세 신발을 갈아 신고 달려 나갈 듯

이마에 돋는 땀방울이 차갑게 화덕을 달군다

거칠게 달려온 갈기와 발톱 아픈 날들을

구부리고 두드렸다가 다시 펴는 망치질,

저 사내의 동작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어쩌면 빠른 속도가 스스로에게 필요한 듯

발 아픈 말들이 씽씽 달릴 수 있게

힝힝대던 무쇠를 얌전한 수제화로 다듬고 있다

징이 없어서 자주 떨어져나갔던 발굽들,

그래, 달리지 못한 세월은 얼마나 많았던가

잘 부리려면 제대로 손을 봐야하는 법,

울퉁불퉁한 길도 잘 달릴 수 있게, 편자는

말의 신발, 불편한 구두의 말들에게

편자를 대주는 일은 길을 잘 닦는 일이다

검게 그을린 땀범벅의 근육이

불꽃 너울대는 화덕에 시우쇠를 녹이면

망치질 손등마다 시퍼런 힘줄이 불끈 솟는다

발굽의 두께를 다스리기 위해 몇 번이고 두드리고 다시 펴는 시간,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달아오른 열기가 여름 장제소를 달구고 있다

 

*편자 : 험하고 울퉁불퉁한 노면으로부터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는 U자형의 쇳조각.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