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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의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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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1건 조회 3,199회 작성일 13-10-2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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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의 요건

 

1.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글 <답창애(答蒼厓)>에 나오는 이야기다. 마을의 한 어린아이가 천자문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피우자, 훈장이 이를 나무라자 아이의 대답이 참으로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천(天)’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천자문의 첫 마디인 ‘천지현황(天地玄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대부분 천자문이 푸른 하늘을 검다고 가르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또한 <답경지(答京之)>란 글에서 연암은 “이른 아침 푸른 녹음이 우거진 가운데 노니는 새들의 날갯짓과 지저귀는 소리 속에서 봄날의 흥취를 깨달았다”고 하였다. 하긴 푸드덕거리는 새들의 날갯짓이 주는 봄날의 생명력이나 조잘대는 새의 울음소리가 주는 봄날의 흥취를 과연 어떤 단어가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옛사람들은 이를 ‘생취(生趣)’, ‘생의(生意)’라고 하였는데, 이는 말 그대로 살아 영동(靈動)하는 운치인 것으로, 이것이 없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모름지기 사물의 심장부에 들어가 핵심을 찌르려면 죽은 정신이나 몽롱한 시선으로는 불가능하다. 시인은 위의 꼬마처럼 천지현황의 나태한 관습을 거부하는 정신을 지녀야 할 것이다. 즉 생동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물상 속에 감춰진 비의(秘儀)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언어의 사원이요, 시인은 그 사원의 제사장이다. 시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어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언어를 주재하여야 한다. 시인이 한번 사변(思辨)의 늪에 빠져들게 되면 생취(生趣)는 간데없고 진부한 관념의 시체들만 뒹굴게 되어 시가 아닌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엄우는, 시인이 지녀야 할 미덕을 ‘흥취(興趣)’에서 찾았는데, 이는 ‘생취’와도 같은 의미다. 그렇다면 흥취를 지닌 시는 어떤 것일까? 그는 이를 몇 가지 비유를 통해 말하고 있다. 공중지음(空中之音), 상중지색(相中之色), 수월지월(水月之月), 경중지상(鏡中之象)이 바로 그것이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소리, 형상 속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색채, 물 속에 비친 달, 거울 속의 형상은 모두 감각 기관을 통해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물 속의 달은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흔들려 사라지고 만다. 달의 실체는 하늘에 떠 있고, 물은 그 실체를 투영할 뿐이다. 물 속에 녹아 있는 소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짠맛으로 소금의 성분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을 뿐, 만지거나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다. 흥취 역시 이와 같아서 시인의 정신은 저만치 허공에 떠 있고, 언어를 통해 수면 위에 그 정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결국 훌륭한 시는 독자를 느껴서 알게 할 뿐, 따져서 납득시키려 하지 않는다. 엄우는 ‘말은 끝났어도 시의 뜻은 다함이 없어야 한다’라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는데, 이는 시가 범종의 소리처럼 유장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시인이 짓는 게 아니라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려 언어로 형상화된 것이 시라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 시는 함축(含蓄)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므로 시인이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고려 시대 최고의 시인 이규보가 시로써 시를 논한 <논시(論詩)>의 첫 두 구에 “시 짓는 데 특히 어려운 것은 / 말과 뜻이 아울러 아름다움을 얻는 것”이라 하였는바, 이는 시의 참뜻을 벗어난, 알맹이 없는 수사(修辭)만을 일삼는 당대 시단의 폐단을 지적한 것이라 한다.

  박지원은 다음의 두 가지 예화로 당대 시인들을 비판한 바 있다. 첫째는 ‘이명(耳鳴)’을 앓고 있는 아이가 남들이 자신의 귓속에서 나는 소리를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는 것이고, 둘째는 코골이 시골 사내가 여러 사람과 함께 잠을 자다가 남들이 시끄럽다고 흔들어 깨우자 “내가 언제 코를 골았단 말인가?”라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명’은 자기만 알고 남은 결코 알 수 없는 경우이고, ‘코골이’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르는 경우이다. 남들이 안목이 없어 나의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분명 자아도취의 이명증에 걸린 꼬마일 것이고, 남들의 적절한 지적에도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코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시인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되면서, 자신의 ‘코골이’만은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다’라는 말이 있듯이 시와 그림은 오래 전부터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특히 한시(漢詩)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경물은 객관적 물상이기에 자신의 마음을 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 하는데, 이를 ‘사의전신(寫意傳神)’이라 한다.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로, 그 구체적 방법은 ‘입상진의(立像盡意)’ 즉 상세한 설명 대신 ‘형상을 세워 이를 통해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날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라는 제목으로 화제(畵題)를 내놓자 대부분의 화가들은 무수한 산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 잡은 고색창연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하였지만,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에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숲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스님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을 뿐이었다. 스님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 그러니까 이 화가는 절을 대신해 물 길러 나온 스님을 그린 것이다.

  한번은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라는 화제가 주어져 모두들 말발굽에서 나는 꽃향기를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한 화가는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는 그림을 제출하였다고 한다.

   구한말 고종 황제가 소치 허유를 불러 장난삼아 춘화도(春畵圖)를 그려 바칠 것을 명하자, 그는 고민 끝에 ‘깊은 산속 외딴 집 섬돌 위에 남녀의 신발이 나란히 놓인 그림’을 그려 바쳤다고 한다.

  이 같은 예화는 바로 동양화의 화법 중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의 원리를 따른 것으로, 수묵으로 달을 그리려 할 때 달은 희므로 색칠할 수 없기에 달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달만 남겨둔 채 그 나머지 부분을 채색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즉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저것을 그리는 방법으로, 시인이 시에서 말하는 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가가 달을 그리지 않고도 달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수법 사이에는 공통적으로 관류하는 정신이 있다. 한편의 훌륭한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현 전달해야 한다.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쉬는 <시의 작법>이란 글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시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서는 안 되고 등가적(等價的)이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시의 언어가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한 간접화의 방식으로 전달해야 함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시인은 할 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말고 사물을 통해 말해야 한다. 아니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롭게 만들어야 한다. 시인은 괴롭다는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 대신 독자가 그 괴로운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시인이 직접 나서서 시시콜콜한 자기감정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200자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20자로 줄여 말할 것인가로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180자를 걷어낼 것인가로 고민하라는 것이다. 시인이 다 말해버려, 독자가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시인이 언어의 미로 위에 숨겨놓은 코드를 독자가 찾아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평가받는 정지용의 대표시 <유리창 1>(『조선지광』, 1930년)을 살펴보자.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열없이 : 맥없이

 

  이 시는 ‘차고 슬픈 것’, ‘외로운 황홀한 심사’ 등 소위 ‘감정의 대위법(對位法)’에 의한 정감의 절제와 선명한 이미지의 사용, 그리고 감각적인 시어의 선택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시인의 비애감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시어인 ‘유리창’은 차가운 느낌을 주는 광물성 이미지로서 창 안과 밖을 단절시키는 동시에,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통로로 두 세계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유리창은 시적 자아와 그리워하는 대상[죽은 아이]을 격리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나타나는 영상(별), 즉 죽은 아이의 영혼과의 교감을 가능하게 해 주는 이중적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어두운 밤, 창가에 서서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워하고 있다.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창밖의 어둠은 그의 허망하고 괴로운 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를 더욱 아프게 한다. 그러다 그는 유리창에 뿌옇게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자신의 입김 자국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죽은 제 아이로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 때, 멀리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가 유리창에 투영되자, 그는 몇 번씩이나 유리창에 서린 입김을 지우며 창 밖의 어둠과 보석처럼 빛나는 별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시적 자아는 한밤중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별처럼 떠오르는 죽은 아이의 영상을 만나기 위해 홀로 유리창을 닦는다.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외로우면서도 황홀한 심사’라고 생각하는 시적 자아는 아이를 보기 위해 계속 유리창을 닦지만, ‘산새처럼 날아 간’ 아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아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외로운 심사’ 때문이지만, 유리창을 닦는 일종의 의식을 통해 그 아이를 영상으로 만나고 있기에 유리창을 닦는 것을 ‘황홀한 심사’로 인식하는 이 시인에게서 우리는 격한 감정을 슬기롭게 절제하는 그의 인간적 완성도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도 마지막 시행에 와서는 그 동안 참아왔던 슬픔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아아’라는 감탄사와 느낌표(!)로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따스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를 모두 그의 슬픔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렇듯 이 시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창작된 작품이지만, 자식을 잃은 비통마저도 절제해 내는 인간적 성숙도와 문학적 완성도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 준다.

 

3.

  대유(大儒) 율곡 이이는 “말은 소리의 정채(精彩)로운 것이오, 문사(文辭)는 말의 정채로운 것이며, 시는 문사의 정채로운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조선 중기 때 시인 권필 역시 “시는 말의 정채로운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시는 인간의 언어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날마다 폭포처럼 새시집이 쏟아져 나오고, 달마다 계절마다 신작시가 문학잡지에 넘쳐나지만, 과연 ‘정채로운 말’로 이루어진 시는 얼마나 될까. 알맹이 없는 껍데기뿐인 시, 헛된 구호나 낯선 기호(記號)의 나열뿐인 시, 몸내라곤 전혀 없이 그저 현란한 기교나 수사(修辭)뿐인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시가 허다한 것이 오늘날 우리 시단의 현실이다. 물론 이것은 문화 권력과 돈을 매개로, 엄격한 검증 과정도 없이 국화빵 찍어내듯이 시인을 양산하는 대다수 문학잡지들의 허술한 등단 제도와, 고통스런 수련 과정도 없이 ‘시인’이란 명예만 뒤좇는 문학 광신도들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도처에 시인이 넘쳐나는 시인 공화국 대한민국이다. 우스갯소리로 서울 남산에 올라가 돌멩이를 던지면, 맞는 게 시인일 만큼 우리는 시인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을 마냥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로부터 언어는 뜻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는, 이른바 ‘언불진의(言不盡意)’의 생각이 널리 인식되어 왔다. 이것은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는 공자의 말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뜻을 다할 수 없는 말이지만, 말을 다할 수 없는 글이지만, 기왕 시를 쓰려면 뜻을 다할 수 있도록, 말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이명’과 ‘코골이’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좋은 시를 쓸 수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지역 문단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시인은 오직 시로 말할 뿐이다. 행사는 많은데 정작 문학은 없고, 시인은 많은데 있어야 할 시는 없는 게 현재 원주문학의 참모습이 아닌지 우리 모두 냉철히 뒤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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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헌님의 댓글

김종헌 작성일

<p>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