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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뒤집어 입는다/ 문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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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2,985회 작성일 13-11-18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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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뒤집어 입는다 

 

 

문충성 

 

 

가지나 고추나 토마토 묘 심으려

텃밭 삽으로 팍팍 퍼 엎듯

그냥 팍 못된 삶 뒤집어엎었으면

참 좋겠다 말하면

곱게 늙어라

마음이야 이팔에 청춘이지만

허옇게 힘 빠지는 머리칼

빈 세월 주름지는 이마

손등엔 벌써 검버섯들 자라나고

허히 꼬부라져가는데 어정어정

노망났다고 벗들이 말한다

젊었을 때는 정화 대상이 되고

늙어선 구조 조정 대상이 되고

비겁하게 세상 눈치나 살피며

팍 뒤집어엎었으면

외할머니 살았을 적

그냥 입으면 실밥 때문에 몸이 껄끄럽다

속옷 뒤집어 입으셨지

속실밥 밖으로 나오니 매끄러워 좋다고

너무 껄끄러워

아무도 몰래

속옷 뒤집어 입는다

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 매끄럽다 시시하게

 

 

문충성 시집 『 허공 』, 《문학과지성사》에서

 

 

어떻게 보면 세상이란 외형적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에 매달리는 경향이 강하다. 실속이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세상은 마으속의 길을 낸 사람보다는 겉모습 번드름하 사람을 좋게 본다. 내적인기준이 무모하기 때문이다. 사람 속을 바라보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가름하는 게 학력이나 자격같은 것이다. 문충성 시인은 그런 세상에 자기 속살 간지럽히는 속옷 뒤집어 입으셨던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그 마음처럼 세상을 매끄럽게 뒤집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 만큼 우리 사회가 개개인의 충돌을 매끄럽게 할 만한 여유가 없고, 노력이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과 삶보다는 전체주의에 함몰된 세상에 살고 있다. 사상이 자유롭지 못하고, 언론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다. 입을 봉하고 눈을 봉하며 늙은 나무에 잎이 피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져 속옷 뒤집어 입고 속살 꺼끄럽지 않아 좋은 빈 웃음이나 삼키는 덧없는 세상이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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