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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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천양희
눈물로 된 몸을 가진 새가 있다
주둥이가 없어 먹이를 물 수 없는 새가 있다
발이 없어 지상에 내려오면죽는 새가 있다
온몸이 가시로 된 나무가 있다
그늘에서만 사는 나무가 있다
햇빛을 받으면 죽는 나무가 있다
운명이란 누가 쓴
잔인한 자서전일까
천양희 시집 『 너무 많은 입 』, 《창비》에서
운명이란 그런 것 같다. 도공의 손에 자기로 빚어지는 흙이 있는가 하면, 질그릇으로 빚어지는 흙이 있고, 사발이나 밥그릇으로 빚어지는 흙이 있다. 매 순간 도공의 마음 움직임에 따라 그 모양이 정해지기 때문에 특정하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그런 것이 없는 모양이 운명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만들어져 어디에 쓰이냐에 따라 정해지는 게 운명같다. 천양희 시인은 "가시로만 된 나무, 그늘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 햇빛을 받으면 죽는 것...."등을 생각하며 운명이라는 그 말 자체가 잔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神은 그런 자인한 운명의 자서전을 쓰며 무수한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꽃피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데, 어떤 것은 땅 속의 거름이 되어야 하고 어떤 것은 그 땅을 지탱하는 둑이 되어야 하고, 어떤 것은 그 땅의 빛이 되어야만 농부의 시름을 덜어주니 말이다. 모두 제 각각의 위치에 맞는 틀에서 살아가는 게 세상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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