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title05.gif

너에게 쓴다 / 천양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권정남
댓글 1건 조회 3,271회 작성일 13-12-21 10:29

본문

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천양희 시집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 』,《작가 》에서

 

 

우리가 살며 자신의 일생을 기록한 것은 자신의 몸이라는 것. 젊은이가 얼굴 팽팽한 것은 아직 마음의 기록들이 팽팽하기 때문, 그러나 나이드신 어른들의 얼굴의 주름은 자기 삶의 기록의 장이 너무 많다는 것, 내가 내 몸이 쓰고 있는 것들이 나는 모를 수 있고, 잊을 수 있고, 지나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 몸은 그것들을 몸으로 받아쓰고 평생 그 자연과 환경에 녹아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더 많은 것을 세상속에서 받아쓰는 일을 하다보니 경험이 축적되는 것이다. 천양희 시인의 「너에게 쓴다 」도 길 위에서 다 닳은 신발, 아마 그것은 자기 삶의 일생이라는 신발일 것이고, 그 일생의 마음이 때로는 먹구름으로 몰려오고, 황혼의 노늘빛으로 몰려오고, 깊은 수렁의 늪으로 올 때가 있다. 우린 스스로 그 풍화되는 삶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쓰고 있느냐에 행복의 마음이 다를 것이다. 깊은 수렁에서도 연꽃처럼 살면 꽃향기를 내 품겠지만, 역겨움을 토하는 시체로 살면 내 몸이 썪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매일 너라는 나를 만나고 헤어지며 가르쳐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p>겨울 아침&nbsp; 천양희 님의 시를 읽고 울컥 해지네요.</p>
<p>수많은 꽃이 피고 지고 -&nbsp; 길을 만들고 ---</p>
<p>生의 풍화를 위해 달려온길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