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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화석/ 김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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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3건 조회 3,088회 작성일 14-01-0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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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화석/ 김순진

 

 

복어가 그물에 걸리기 전까지

아무도 복어에 관심을 두는 이 없었으나

뒤집힌 배로 지느러미를 힘없이 파닥이자

배가 남산만 한 복어를 보려고

그 종자들이 여럿 다녀갔다

도마 위에 올려진 복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소년은

옆에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두어 번 지느러미를 파닥이던 복어가 눈을 감았다

복어는 수제비반죽 같은 베옷을 입혀

요란한 상여에 올려졌고

복어 뱃속에서 스스로 끓던

복수가 넘쳐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은 복어가 맛있을 줄 아는지

술병을 가지고 달려들었으나

한창 산란기의 맹독을 가진 복어를 먹지 못하고

장구산에 묻기로 했나보다

며치루 며치루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치루 며치루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42년 동안 탁류의 바다를 헤엄쳐 온 복어는 요단강을 건넜고

다른 복어들이 강을 건너간 복어를 찬송하는 사이

포클레인은 강둑을 헐었다

복腹비린내가 천지를 진동하는 날

하늘에서는 부슬부슬 눈물 섞인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고형의 틀에 복어를 넣더니

에헤이 달고 에해이 달고

회를 개어 복어 화석 다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날 이후 소년의 가슴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화석이 들어앉았다

 

*어머니는 42세의 산란기에 돌아갔습니다

 

- 시집『복어화석』(문학공원,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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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어화석』은 첫 시집《광대이야기》이후 시인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그러니까 1984년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던 해인 24세에 ‘덜컥’ 시집을 낸 이후 30년 만이다. 시인은 약 10년 전부터 계간 문예지 <스토리문학>을 발행하면서 <문학공원>이란 출판사를 경영해 오고 있고, 2010년부터는 고려대학교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해온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시집쯤은 ‘간단히’ 낼 수 있는 처지임에도 스스로 시인이라 자부하고 납득하기까지 참고 참아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다.

 

 아마 그동안 써온 시를 분량이 차는 족족 시집으로 묶었다면 열권은 채웠을 것이다. 그만큼 작품을 엄격하게 골랐다는 의미겠는데, 표제 시 ‘복어화석’은 시인이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6년에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에 대한 슬픈 이야기다. 그것도 그냥 고이 돌아가신 게 아니라 간경화로 배가 복어처럼 불러 '꽃다운 산란기’에 가셨으니 그 애통한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리랴. 어머니를 상여에 메고 가는데 복수가 터져서 상여를 멘 사람들이 온통 핏물로 젖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는 너무나 엄청난 고통인지라 ‘잘가요, 엄마’ 한 마디 말 못하고 도저히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그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화석으로 들어앉아 긴 세월이 흐른 뒤 고해성사의 마음으로 그날을 돌아본다. 그 무거운 슬픔을 안고서 눈물과 고통과 한숨으로 점철된 시련의 삶이 시작되었다. 안 해본 일이 없었고 잡초처럼 억척같이 생을 견뎌왔다. 그런 가운데 문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1995년 방송통신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것이 본격적으로 문학과의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되었다.

 

 그는 시뿐 아니라 소설 수필 동화 문학평론 등 그가 전전했던 직업만큼이나 섭렵하는 문학 장르 또한 ‘버라이어티’하다. 그만큼 그는 거침없는 사람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자신감도 충만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남대문시장으로 가서 ‘골라골라’를 외칠 수 있고, 그곳에서 그의 시도 팔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문학이 용기와 패기만으로 가능한 노릇은 아니지만 여전히 패기만만한 문학에의 열정은 그의 문학 사업과 작품세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처럼 그의 문학에도 간절히 스며들길 바란다.

 

 

권순진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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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p>가슴이 너무 짠 합니다.</p>
<p>요즘 저는&nbsp;웰빙이 아니라 웰 다이에 관심이 가는 중입니다.</p>
<p>태어나듯 죽음도 축복처럼 받아들여야 된다는 쪽으로 </p>
<p>자꾸 마음의 방향을 틉니다.</p>
<p>1월 2일 새해 둘쨋날 새벽버스에 몸을 싣고</p>
<p>&nbsp;친정아버지를 경희의료원에 입원시켰습니다.</p>
<p>세상보다 커 보였던 아버지를&nbsp;어린&nbsp;아들처럼 손잡고 병원을 누비던 아침.</p>
<p>참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p>
<p>그리고 끌어안고 있는 많은 것들을 많이 버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p>
<p>모두 건강하세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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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p>그랬군요 저도 이시를 보고 너무 가슴이 저렸어요. --- 맞아요.&nbsp; 수명이 길수록 이젠 웰 다이 시대 지요.</p>
<p>영애를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더 마음이 아팠겠어요. 쾌유를 빌어드립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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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여님의 댓글

이진여 작성일

<p>왈칵 슬프고 서러운.. </p>
<p>영애언냐.. 어버님 빠른 쾌차 빌겠습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