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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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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진여
댓글 2건 조회 3,850회 작성일 14-01-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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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따로 한 봉지 챙겨 온전히 갖지 못한 하루*가

하느님도 욕심나

한 봉지 챙기고 싶어했을 만치 축복이라는 인간의 하

루가 갔다

 

밤이 와서, 천사가 와서

거꾸러져도 거꾸러져도 끝날 것 같지 않은 하루에

어둠의 장막을 쳐내려서

그 느꺼운 어둠을 은총처럼 온 몸에 덜덜 받으며 인간

의 하루가 갔다

 

주여, 주여, 내가 주의 기적을 체험한 것이옵니까

은혜의 불을 입은 것이옵니까

 

몸을 말고 말아 풀 수 없는 자물통이 된 송충이가

몇세기 전 것일까

솔잎 물똥을 질금 흘리며 꿈틀,

자물통의 몸을 꿈틀, 펴기 시작하였으니

 

갈 수 없는 하루가 갔다

딸 수 없는 자물통의 입이 물러져 내렸다

 

송충이는 꾸불텅 방향을 가늠하며

가는 하루의 기적을 통성의 눈물로 증언하리라

푸르죽한 물똥을 또 질금 흘리며 고개를 쳐들다

몰려오는 미래 새 성경 기록자들에 싸여 다시 떨었다

 

*문인수 시 [최첨단] 둘째 행에서 인용함

-창비 '세워진 사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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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여님의 댓글

이진여 작성일

<p>기적도 변화도 없어 </p>
<p>평온한&nbsp;전쟁의 하루&nbsp;시작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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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p>진명 ! 스무살 시절 내 친구 ! 지금은 유명시인 아내되고 유명시인이 되었요-- 자주 안만나도 열심히 쓰는 모습 보기 좋네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