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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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따로 한 봉지 챙겨 온전히 갖지 못한 하루*가
하느님도 욕심나
한 봉지 챙기고 싶어했을 만치 축복이라는 인간의 하
루가 갔다
밤이 와서, 천사가 와서
거꾸러져도 거꾸러져도 끝날 것 같지 않은 하루에
어둠의 장막을 쳐내려서
그 느꺼운 어둠을 은총처럼 온 몸에 덜덜 받으며 인간
의 하루가 갔다
주여, 주여, 내가 주의 기적을 체험한 것이옵니까
은혜의 불을 입은 것이옵니까
몸을 말고 말아 풀 수 없는 자물통이 된 송충이가
몇세기 전 것일까
솔잎 물똥을 질금 흘리며 꿈틀,
자물통의 몸을 꿈틀, 펴기 시작하였으니
갈 수 없는 하루가 갔다
딸 수 없는 자물통의 입이 물러져 내렸다
송충이는 꾸불텅 방향을 가늠하며
가는 하루의 기적을 통성의 눈물로 증언하리라
푸르죽한 물똥을 또 질금 흘리며 고개를 쳐들다
몰려오는 미래 새 성경 기록자들에 싸여 다시 떨었다
*문인수 시 [최첨단] 둘째 행에서 인용함
-창비 '세워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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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진여님의 댓글
이진여 작성일
<p>기적도 변화도 없어 </p>
<p>평온한 전쟁의 하루 시작입니다..</p>
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p>진명 ! 스무살 시절 내 친구 ! 지금은 유명시인 아내되고 유명시인이 되었요-- 자주 안만나도 열심히 쓰는 모습 보기 좋네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