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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소리 / 정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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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2건 조회 3,543회 작성일 14-02-0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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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소리

                           정채봉

 

깊어 가는 밤에 고향을 지키고 사는 친구에게 연락할 일이 있어서 수화기를 들었다.

 

한참 신호를 보내고서야 저쪽 편 친구가 나왔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느냐는 내 타박에 친구는 행랑에서 새끼를 꼬고 있어노라고 한다. 그런데 수화기에서는 친구의 정겨운 목소리 너머로 아득히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친구는

"우리 복실이가 하도 달이 볼근게 달보고 짖는갑다."고 했다.

내가 참 오랜만에 들으니 고향의 개 짖는 소리조차도 듣기 좋다고 하자 친구가 좀 기다리라 하고선 아예 전화기를 마루로 들고 나가서 복실이 쪽으로 수화기를 돌려댄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땐 이미 주인을 알아본 이 집 복실이가 짖기를 뚝 그치고 꼬리를 흔드는 모양이었다.

 

수화기에서

"야, 이놈아, 짖어! 짖으란 말이여."

하는 소리만 반복되는 것이어서 나를 웃게 하였다.

 

지난 해 늦가을 어느 날 밤이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이 고향 친구가 다짜고짜로 "들어라 잉."하고선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웬일인가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또르륵 또르륵"하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그리고 지난 섣달 그믐날 밤이었다.

텔레비전으로 제야 종소리를 들으려고 앉아 있는데 고향의 이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무엇하고 있느냐고 해서 제야 종소리를 들으려 기다리고 있다 했더니 술을 한잔하였는지, 단번에 욕지거리가 얹혀 나왔다.

 

"염병허네. 야, 종소리가 울린다고 먼동이 튼다냐? 닭이 울어야제. 첫닭이 울어야 새벽이 온단 말이여. 자라, 자. 나가 우리 동네 첫닭이 우는소릴 전화로 들려 줄텐게. 그 소리로 새해를 멋들어지게 열으란 말이여. 알것냐?"

 

나는 그 말이 옳겠다 싶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창이 훤하게 밝아 있지 않은가.

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마디 해 줄까 하다가 1월1일 아침이라서 참았다.

그런데 초이튿날 꼭두새벽이었다.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고향 친구 목소리였다.

 

"미안타잉. 염병헐 술이 병이다. 일어나본께 해가 엉덩이에 떠 뿌렸지 뭐냐. 시방 첫닭이 멋지게 운다. 이 소리로 유감 있으면 풀어라, 잉?"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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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님의 댓글

김향숙 작성일

<p>산골에, 바닷가에, 섬에, 도시에. . . <br />이런 통화 가능한 친구들이 많으면 참 좋겠네요.</p>
<p>우선 도시로 가서 사는 내 친구들에게</p>
<p>나도 </p>
<p>시골 사는 친구의 소명(?)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 보게되는 시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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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p>김향숙 시인님 ! 겨울 풍경 멋진 아름다운 집 사진 좀 게시판에 올려 주세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