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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서의 체험과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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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2건 조회 3,141회 작성일 14-02-0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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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서의 체험과 상상력

 

1. 수필에서의 체험

 

자신의 창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래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삶의 문제들과 부딪치게 된다. 그런 문제들을 진지하고 절실하게 인식하고 인생의 어떤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때 그것을 체험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면서 행복을 추구하지만 좌절과 절망을 맛보게 될 때도 있고, 좌절과 절망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누리려고 도전하지만 결국은 죽음이란 한계상황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될 때, 그런 비극적 숙명을 타고 난 인간의 속성 앞에 무력해 지는 삶의 다양한 체험들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되고 작품의 주제가 된다.

모든 문학작품은 작가의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다. 작가의 체험이 글로 쓰일 때에는 상상력에 의해서 재구성된 언어에 의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은 그 자체가 작가의 체험이 형상화된 상상력의 산물이다. 상상력은 인간을 현실적 존재로부터 초월적 존재를 경험하게 해 주는 힘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 정신이 무한히 확장 돨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으로, <미적 경험> 과 <초월적 사유> 를 내포하게 된다. 철학자 베이컨은 <역사가 기억에, 철학이 이성에 의지할 때, 문학은 상상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고 말했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작가 자신이 체험으로 얻어진 인간에 대한 의식의 깊이와 정신적 제현을 상상력에 의해서 얼마나 잘 들어내느냐에 달렸다고 보겠다.

 

2. 수필에서의 상상력과 문학어(상상어)

 

F. 홉스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무수한 감각적 체험의 잔재를 자지고 새로운 사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상상력이라 했다. 과학이 이론화를 추구하는 지적 사유능력에 의존한다면 예술은 예술가의 체험과 이상을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담기 위해 상상력의 기능에 의존한다.

상상력은 사물의 실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상상력의 기능은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세계, 즉 지각에도 없고 기억에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문학에 있어 상상력이란 작품을 이루게 하는 체험을 표현하는 의식의 한 양식으로서의 기능을 의미한다고 본다.

우리는 체험하지 않은 것은 사유할 수 없다.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의 경험 속에 포함된 기존 인식과 사물에 대한 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상력도 존재하지 않은 것을 만드는 기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드럽 프라이(Northrop Frye)는 인간의 언어를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일상어와 공용어와 상상어(문학어)가 그것이다. 그런 다음 문학은 <상상 언어로 표현된 예술> 이라고 정의했다.

매일 사용하는 일상어는 이미 익숙해져서 낯익고 진부한 낡은 언어다. 그것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주의를 끌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어는 낯설게 된 언어다. 따라서 일상어를 자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일상어가 내용에만 관심이 있다만 문학어는 형식과 내용이 구분되지 않는 구조화된 언어다.

문학어는 일상어로 경험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어가 갖는 정보량과 일상어의 정보량을 비교하면, 시 한 줄이 두꺼운 철학 책 한 권 분량보다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수필쓰기는 사진 찍기가 아니라 초상화 그리기와 같다.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았을 때와 초상화로 그려졌을 때의 모습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게 된다. 사진은 나의 사실적인 모습의 복사지만 초상화는 내 얼굴의 특성을 가려 화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현해낸 모습이다. 어느 부분은 생략되고, 어느 부분은 강조되고, 나의 개성을 잘 들어내는 부분을 찾아 특징을 살려 나의 모습을 담아 내는 것이다. 즉 내 초상화는 화가라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창작해 낸 작품인 것이다. 그 초상화의 모습도 사진의 모습처럼 틀림없이 내 모습이지만 사진과 달리 초상화에서는 그린 사람의 의도와 개성과 상상력과 창조정신이 함께 들어나게 된다.

수필이 작품이 된다는 것도 경험의 소재를 가지고 자신이 표현해 내고자 하는 내용을 상상력에 의해 작가의 의도가 문학어로 재구성될 때 작품이 된다.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났는지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느티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김기림의 <길> 전문

 

위의 글은 김기림 (1908 - ) 의 수필 < 길 >의 전문이다.

 

함축적인 이미지로 채워진 글로, 작가의 체험을 상상력을 통해 쓴 글이다. 독자도 표면에 들어난 글 보다 그 이면에 숨어있는 작가의 마음을 상상력을 통해 느끼는 글이다. 원고지 2매에 불과한 이 수필 속에는 장편 소설을 읽는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담기고, 외롭고, 어둡고, 힘든 시대를 살다간 젊은이의 고뇌가 잘 들어나 독자도 작가의 정서에 공감하고 감동한다.

의미를 내포한 함축적인 언어가 생략된 문장으로 작품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문학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 이글은 심상으로 그려진 산문이라기보다 운문에 가까운 글이다.

이처럼 작가의 상상력이 담기는 수필은 일상적인 언어로 쓰였으되 그 쓰임이 문학임을 볼 수 있다.

 

3. 수필다운 수필

 

글에 있어 언어는 꽃에 비유할 수 있다. 그 꽃으로 엮는 꽃다발이 작품이라면 꽃다발에서 풍겨나는 향기는 작가의 인품의 향기이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언어의 형상화를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내포하여 전하는 문학의 세계다. 문학적 언어의 실체는 삶이며, 그 삶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 있다.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모두가 다 아는 친숙하고 개인적인, 자질구레한 일상의 이야기들, 그것들이 소재가 되고, 뻔히 다 아는 이야기면서 읽으면 공감하고 감동하는 작품이 되는 것은 작가가 표현해 내는 언어에 의해서다. 독자가 작품을 읽는 목적도 그 작품이 담아내는 이야기에 매이기보다 개성적인 언어에 의한 표현에 의존한다. 결국 수필을 쓴다는 것은 작가의 체험을 통하여 얻어진 사실을 어떻게 형상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수필은 작가와 독자의 대화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고 마음과 마음이 마주하며 서로가 주어진 생활 여건 속에서 우리 것에 대한 문화적 공유에 대한 갈증으로 함께 문제를 제기하고 고뇌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글이다. 우리들 개개인에게는 자기 성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우리의 시건 또한 내면을 향해 열리지 않을 때 수필은 우리 의식의 성찰을 이끌어 주고, 인간성의 회복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활을 하기도 한다.

그저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되게 쓰는 것. 그저 놓여 있는 사실이 아니라 놓이게 된 것의 감동적 발견으로서의 인격의 만남일 때 수필다운 수필이 될 것이다.

수필을 쓰면서, 수필은 소재가 체험으로 얻어진 자료라고 해서 소재만의 글로 수필을 쓴다면 비록 진솔한 자기 고백이 소재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해도 수필이 되기 어렵다.

물론 소설이든 수필이든 일상적인 이야기 (소재) 가 글의 바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런 이야기들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우리 삶의 이야기로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그 보편적인 이야기에 작가의 체험을 담아낼 때 비로소 문학으로서의 항구성을 유지하게 된다. 즉 작가의 체험이 어떻게 글로 살아나느냐에 따라 문학이 되기도 하고 잡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의 체험에, 상상력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하여 짜여지는 구조, 외형적 내포적 양 측면에서 사실과 상상력의 균형성이 유지될 때 수필다운 수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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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선님의 댓글

최명선 작성일

<p>


문학이 되기도 하고 잡문이 되기도 하는 수필,</p><p>어느 글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p><p>수필 잘 쓰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p><p>&nbsp;</p><p>귀한 글&nbsp;잘 읽고 갑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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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금희님의 댓글

노금희 작성일

<p>점점 더 어려워져서 걱정입니다...</p>
<p>&nbs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