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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천재지변이다 /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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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진여
댓글 2건 조회 4,130회 작성일 14-02-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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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봐봐 눈이 와 한 사나흘 퍼부었으면, 그런

전화 한통 못한다 도시에 오는 눈은 금세 천재지변이다

금세 재난상황이다 금세 쓰레기 대란이다

어느새 도시뿐 아니다

눈에 지워진 길 오지 않는 완행버스 기다리던

시골 할머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시골사람은 다 죽으란 말이냐! 내지르는

그 소리 참 야속하다 그러나 어쩌나

시골도 오전에 차가 끊기니 오후에 천재지변이다

 

저리 아름다운 눈 오시는 참에 밖으로만 나돌던

마음 갈피 쟁여 전설이라도 몸에 푹 익혀두면 좋으련만

하지만 또 어쩌나 재난은 대부분 없는 사람들 차지

부자나라 쓰레기는 저지대 사람들의 재난

길 끊겨 고립이라지만 실상은 자립이 사라진 때문

사통팔달 길 뚫고 무선전화 번개처럼 뚫어놓고도

길 없던 시절에는 없던 말 소통 소통부재가 소통하는데

하향 소통이다 모든 길은 빨대처럼 빨아들이는 대롱이다

일년에 공휴일 백스무날에 휴가에 노는 날 주체 못해도

사나흘 눈이 오니 죽기살기다

제트기 타도 빠듯하고 백날을 놀아도 빠듯하고

번개를 타도 빠듯하고 빠르면 빠를수록 인생이 빠듯하다

시간이 점점 곤두선다 수직으로 선다 곤두선다

곤두서다 생은 한순간 꽈당 자빠진다

 

아궁이에 군불 넣고 장독대 쌓인 눈 털고

고구마 찌고 김치 내고 겨울 고요에 몸 불려 담그는 일

전설이다, 여우 늑대 울던 시절의 전설이다

 

아직도 눈을 기다려 겨울이 오면 아이처럼 보채는 나도

눈온다 좋아하기 민망하다 참 민망하다

동심이 천재지변이다

마음이 천재지변이다 

 

-창비 [그 모든 가장자리]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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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p>요즘에 딱 맞는 시네요. 시인은의 마음은 천재 지변이지요.&nbsp;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p>
<p>'그리운 보리밥집' 피해는 없는지요?&nbs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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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여님의 댓글

이진여 작성일

<p>곤궁해졌습니다...보리밥집이..^&am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