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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춘문에 당선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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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5,059회 작성일 14-02-1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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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2)

201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시소가 있는 풍경/노동주

 

시소가 있는 풍경

-노동주

 

 

시소는 늘 기울어 투석기처럼
한쪽 팔을 바닥
에 떨구고 있다
빈둥거리는 그 사내의 엉덩이
가 얼마나 무거울까
쏘아 올리기에는 시소의 두 팔이 너무 길다
곤장이라도 맞은 듯 매번 엎어져 있다

사내도 굄돌처럼 하늘을 인 듯 무겁다
햇빛 그늘진 저 받침점이란 건 뭔가? 가슴팍에
점 아닌 섬처럼 박힌 저것
누구도 그 중심에 안착해 본 적 없다
시소는 늘 중심을 빗나간 기웃거림의 형식으로
흔들리며 웃고 운다, 끽끽거린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할머니가 가볍게 시소에 앉는다
브라보콘을 흘리는 일곱 살의 오후가 번쩍 들린다
그 기울어진 시소의 경사면
을 따라
문득 이삿짐 트럭이 오르고 영구차가 내려간다
눈길에 미끄러지는 출근길이 열리고
이부자리에 맨발을 모으는 저녁 냄새
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사내의 엉덩이도 시큰거린다
중심으로부터 몸이 무거울수록 가깝게
가벼울수록 멀리 앉는 게 균형을 맞추는 법이라지만
늘 빈손인 사내는 거구여도 뒷자리에 앉고
천근의 추를 몸에 단 흐릿한 얼굴
은 맞은편에 앉았다 간다

시소는 땅 속에 처박히거나
아니면 나무
처럼 직립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곗바늘처럼 좌우로 훅훅 언젠가 돌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진짜 시소의 균형이란
때를 기다리는 것, 엉덩이 짓무르도록
방아를 찧을 때마다 꺽꺽 시소가 울고 있다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이원복

 

나의 악몽은 서정적이다

-이원복

 

 

항아리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
성대를 다친 소녀들,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하는 금붕어들
잠을 잔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배회하는 16분 음표의 음색은
표현할수록 거친 것이어서 누구라도 성대를 다치게 된다
냉정해지자, 탁할수록 냉정해지는 게 필요하다
모두들 잠을 자는 시간, 바람의 음역대는 위험하다
저녁에 지배하는 고요의 폭력성이 고음역대 바람의 성대를 찢고
항아리의 주둥이 부위부터 깨고 있다
물 위를 부유하는 기름의 무지갯빛 닮은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스멀스멀 헤엄치는 항아리 속
성대를 다친 소녀들 입을 벌린 항아리처럼 앉아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 시간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어 한다
소녀들이 잃어버린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저항할 수 없는 시간의 암보(暗譜)다
소녀들의 등에 지느러미가 생길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항아리 속에서 소녀들이 다친 성대를 회복하고 다시 항아리 밖
거친 바람의 음표를 따를 수 있을 때 까지
누군가 깨져 허물어지는 항아리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거기
거대한 항아리 모습의 외로움 하나 앉아 있다

 

 

【이원복 시인 약력】

 

*1974년 울산 출생.
*2008년 울산산업문화축제 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201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뱀을 아세요?/윤석호

 뱀을 아세요?

-윤석호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

독을 품은 것들은 기억력이 없어요
어느 한구석 오목한 데가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뒷걸음질 칠 수 있는 담력이 없어서래요
이방(異邦)의 밑바닥에 몸을 대고 살다 보면
굳이 시간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간혹, 숨 막히게 달 밝은 밤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통째 삼킨 먹이를 삭히며
똬리를 틀어요 철이 든 거지요
저도 한번 쭉 뻗고 살고 싶겠지요
하지만 마음 놓치면 독을 품긴 힘들어져요
무딘 칼은 피차 고통이거든요

번질거리던 각질의 모서리가 굵게 갈라져
살을 후비며 파고든 어느 밤
제 살갗을 찢어 벗겨 내며 뿌리치고,
쉼 없이 날름거리며 생을 지켜 냈어요
이런 아침은 늘 뻐근해요
눈꺼풀 없이 잔 눅눅한 잠을 말려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늘에서 가장 먼 쪽으로 붙어 다니지만
햇살의 따스함을 알고 있나 봐요

 

 

 

【윤석호 시인 약력】

 

*1964년 부산 출생.

*부산대 기계공학과 졸업.

*현 미국 시애틀 거주.

*미주 중앙 신인 문학상 시 부문 당선(2011년).

 

 2014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옹이/박주용

 옹이

-박주용

 

 

난다 냄새 난다 나는 내가 긁어 부스럼이라 냄새 난다 나는 나를 날린 셈인데 냄새 나는 나는 나는 새에게도 냄새 난다 냄

새는 냄새를 전이시켜 새똥 싼 내 하늘도 냄새 난다 냄새는 자꾸 가려워 구름을 비벼대는 것이어서 충혈 된 내 먹구름도

냄새 난다 소나기 한 줄금 쏟아내면 냄새가 사라질 것이란 기대는 금물 사납게 짖어대는 내 번개가 아직도 그 속에 눈이

번쩍 도사리고 있어 크릉크릉 냄새 난다 아귀를 맞추어 장미꽃을 밀어 올리던 내 거미줄에도 말 달리며 방방 뛰던 꽃물이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 옹헤야 냄새 난다 어절씨구 냄새 난다 소리 높여 노래 부르기는 시기상조 이제는 내가 나를 더불고

슬금슬금 거문고를 타야 할 때 내가 나를 데리고 묵상에 들어야 할 시간 소리 없이 냄새 나고 냄새 없이 냄새 난다 내가

나를 산책한 냄새 한 무더기 내 안을 단단히 버티어 간다.

 

 

【박주용 시인 약력】

 

*1961년생.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건양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건양대학교병설 건양고등학교 교사.

 

2014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열화되다/이승은

 열화되다

-이승은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 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
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
딱 그만 크기의 추를 세우고
조그맣게 서 있다
저 추가 어떻게 뜨거움을 보여줄 것인가
작년 봄 2쪽 그즈음과 같은 모양새여서
땅이 열렸을 때부터 생긴 약속이라고
얼추 들은 터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이 넘나드는 순간
추가 넘어졌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
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매화꽃 일생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도
화르르 소란스럽다
단 한 개의 귀를 지닌 추는 냉정을 잃고
물기에 젖어 파리한 소리는 적막을 뚫고
꽃 이파리 하나 열린다
열화되지 않은 꽃은 없으리
바닥 바닥으로만 음각했던
우리들의 희망이 달리 드러난 것이다
여러 번 꽁꽁 얼어 있던 약속이
심장 속 온도에 팔딱거리는
작은 기립을 지지한다
쉿! 다음 쪽 봄꽃도 뜨거워지려 한다

 201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가을, 낯선 도시를 헹구다/김지희

 

 가을, 낯선 도시를 헹구다

 -김지희

 

 

한잔 노동이 넘실대는 부엌에는
여자의 일생이 부조되어 있다
엄마 허벅지 베개 삼아 달게 잠들었던 소녀시절이
캄캄해 보이지 않는 새벽 어스름
잠든 아이의 꿈자리를 지나
슬그머니 부엌에 나가 불을 켠다
문득 완전한 어둠 속에 던져졌던 세상 한 곳이 환하다
옹이 박힌 가슴으로 숭숭 새는 물소리를 잠근다
부엌 속에 갇혀 맵고 짜고 달고
가끔 바삭바삭 타는 소리 너머
나는 세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존재하지 않은 가을이었다
부엌에 앉아 작은 상을 성좌처럼 펴고
나의 언어를, 별을 찾다가 웅크린 어깨선이
어느 파도에 부딪혀 무너지는지 속이 거북하다
살다 남은 시간을 쪼개고
찬 손을 비비고
싱크대 속에 갇혀 몇 년째 속앓이 한 냄비를 닦고
예리한 어둠에 그을린 낯선 도시를 헹구며
깊은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세우고 국을 끓인다
파, 시금치 온통 날것인 것들이 불꽃으로 저를 살라
새로운 맛을 낸다
모든 사랑의 고통의… 뉘우침으로
한 그릇을 위한 부엌의 노동엔 어떤 해석도 필요치 않다
성찬식 밀떡처럼 작은 평화를 입에 물고
부조의 문을 밀고 나와
식구들의 잠든 귀를 깨끗하게 여는 저 폐경기의 새벽!

201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바람의 징후/최지하

 바람의 징후

-최지하

 

 

붉은 헝겊 같은 노을이 살다갔다 
죽은 나무에 혈액형이 달라진 피를 돌려야 할
심장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기다림의 대상이, 그, 무엇이었던 동안 
더 이상 풀빛은 자라지 않았다 
대신에 동구 밖의 삼나무들이 푸른 잎을 마쳤다
가두어 놓았던 귀를 풀어 놓자마자 
귀가 아니라 입이었다며 우는
야행의 고양이와도 같았던,
그것은 단순히 후회에 관한 피력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소문처럼 스쳤다가 간 걸음 속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 전에 내렸던 눈이나 비가 다시 내계(內界)로 
돌아갈지 모른다

당신이 보낸 전령사들, 그, 후로
당신이 직접 와서 지나간 자리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딜 수 있게 할 가능성은
방향에게 기대어 목을 꺾거나 
내게로 오는, 그, 동안을 하르르 밟아주는 일이었다

당신은 증명하지 않고
증명되지 않는다
바람의 채집사를 자처해 보았을지도 모르는
전생보다 더 멀리서 걸어 왔던 세월 동안 
뒷모습 쪽에만 대고, 훨씬 전에 지나간 유행가 같은, 낡은, 
셔터를 겨누어 보기도 했을 거라는

가장 처음일 때 오고
가장 나중일 때 닿았던 
당신의 징후에게, 더 이상 생의 손가락 하나를 
걸어보는 행위를
파란이라거나 파탄이라는 이름으로 치유하지는 않겠다.

 

 

【최지하 시인 약력】

 

*충남 서천 출생.

*광운대 대학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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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영남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 피운다는 것은/송지은

 피운다는 것은

-송지은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어둠이 찰지게 들어있는 방에서 꽃은

게으른 손목에 잡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이 스민 계절은 부풀고

어디에도 합류하지 못한 이력서 같은

천리향 나무 잎사귀 몇 장이

형광등 불빛에 말라 떨어지고 있다

손톱만한 잎사귀의 먼지를 닦아내면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

목마름을 견디며 버틴 푸른 힘줄이 보인다

비정규직 자리에 새 흙을 끌어와 분갈이를 한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나무에 물이 오르면

꽃잎 하나가 어둠을 빠져나와

봄의 이마에 붉은 웃음을 낙점하고 확대한다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에게나 꽃피울 자리는 있다

피운다는 것은 쓰러지기 위한 눈부신 허무

향기를 피우고

곰팡이를 피우고

바닥의 통증까지 밀어올리고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도둑처럼 사라진다

피우는 것들은 모두

어둠을 본적지로 두고 있다

2014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풍경에 놀다/송지은

 풍경에 놀다

-송지은

 

 

하나의 풍경을 읽었다 찬 냉기의 한쪽 모퉁이부터 뜯어내는 봄비의 가느다란 손놀림에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모르는 비

맞은 고양이 울음에 가슴 안에서 빗방울처럼 또박또박 싹이 돋아나는 걸 무심히 들여다보다가 또 다른 카드로 얼굴을 바

꾸는 계절의 어디쯤에서 하나의 풍경에 빠졌다 내 몸까지 다 내어주고 버려진 사마귀의 심장을 법당을 급하게 빠져나오

다 문살에 찍힌 구름의 숨소리를 발뒤꿈치 갈라진 틈으로 새어나오는 겨울의 쓸쓸한 문장으로 읽다가 바람이 긴 바퀴를

돌리며 어둠을 몰아가는 산 어디쯤에서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고요는 소란을 낳느라 고요를 주저앉히고 버릴 수 없는 것

들은 끝내 다른 풍경으로 일어서는데 죽은 쥐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는 것을 엿보다가 문득 나도 그 삶의 연속무늬 쪽으

로 줄을 섰다 교회의 철탑이 모텔 건물에 지그시 그림자를 얹듯이 달이 제 몸을 지우며 죽음이 낳는 새로운 시간을 보여

주듯이 풍경이 내 배경이었으므로 나도 풍경의 배경으로 지기로 했다 너에게

 

 

【송지은 시인 약력】

 

*1964년 충남 금산 출생.

*서울문화예술대학 방송문예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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