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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혁명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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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2건 조회 4,012회 작성일 14-02-1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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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혁명

 

                                   박 소희

 

눈은 언제나 조용히 온다.

많이 올수록 더욱 조용히 치밀하게 온다.

무엇이 됐든 순결하게 되돌릴 수 있을 듯

조용한 눈빛의 눈부신 몸으로 온다.

 

그 은빛 몸에

검은 삽날이 꽂혀도

눈은 결코 붉은 피 흘리지 않는다.

거대하고 번뜩이는 아가리의 기계가 온몸을 집어삼켜도

눈은 조용히 저항하지 않는다.

온정신을 녹여 없애는 염화칼슘을 퍼부어도

눈은 절대 고통을 표현하지 않는다.

햇빛이 뜨거운 물을 끼얹어도

눈은 조용히 눈물 흘릴지언정 비명 지르지 않는다.

 

자신도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위험한 바퀴들이 헛돌게 하고

누군가를 자신의 사막에 고립시키고

누군가의 희망을 비닐하우스처럼 주저앉히면서

그 누군가의 마지막 검은 비명을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산의 나무를 쓰러뜨리면서

수 백 년 버틴 나무의 뼈들이

한순간에 부서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누군가의 힘이 될 양식을 위해

자신의 뜨거운 몸 아래, 밀이 있다면, 하고,

아무리, 푸른 밀밭을, 꿈꾸었어도,

늘 배고파 죽어가는 텅 비고 흰, 조용한,

누군가의 한줄기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군가는 또, 다시, 봄을

눈은 또, 조용히, 겨울을

들이댄다.

거울처럼, 소리 없는 재앙을 반사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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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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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선님의 댓글

최명선 작성일

<p>


멋져요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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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님의 댓글

정명숙 작성일

<p>생각없이 바라보던 눈, 눈의 무게로 주저앉는 좌절과 비애를 보고도 눈의 입장을 생각해 본 일 없었는데...</p>
<p>&nbs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