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병 - 조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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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병
조용숙
내 사후에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이
각막뿐이라는 말에
안구 기증 서명을 하고 나오던 날
멀쩡하던 한쪽 눈이 붉은 등을 내어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좀 멀리 보라고
가까이 보이는 세상만 쫓아다니느라
분주했던 발길을 묶어버립니다
내가 잘못 본 세상이 바로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먼저 옮겨가는 법이라며
오늘밤에 작은딸 눈에도
붉은 등불 하나 켜 놓고 갑니다
그동안 잘못 본 세상 다 태울 때까지
안구 기증 서류에 사인한 잉크가 다 마를 때까지
저는 이 불씨를 소중히 켜 놓겠습니다
- 『모서리를 접다』(시로여는세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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