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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유서 /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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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1,999회 작성일 14-09-24 06:43

본문


 

    가을의 유서

 

                       파블로 네루다

 

 

 

가을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루 밤새 하얗게 시들어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은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 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큰곰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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