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에 들다 / 최명선
페이지 정보
본문
갈뫼 44집 215쪽
곡선에 들다
최명선
구부러진 오이를 파는 할머니,
왜 모두 이렇게 휘었느냐고 묻자
끝물이라 그렇다신다, 끝물이 되면
당신처럼 반듯한 게 없다며 웃으신다
몸도 휘고 푸름도 잃고
살결마저 두꺼워진 오이
그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가시 몇 만
옹이인 듯 자존인 듯 드문드문 박혀있다
꽃 되어 왔던 길은 어디로 가고
직선을 향하던 길은 왜 휘어졌을까
한 생을 걸어왔던 삶의 흔적을
천천히 받아 읽고 돌아서는데
휜 등 어루만지는 오이들 사이
저문 듯, 저무는 낯익은 사람 하나
누구일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칼칼하던 성깔 반으로 구부린 채
기울어진 등줄기 옷 속에 감춘
내가 거기 뉘엿뉘엿 피어 있었다
- 이전글너에게로 가는 길 14.12.29
- 다음글유리창 닦기 / 김향숙 14.12.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