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산수 / 김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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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산수 / 김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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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무렵
거창 오리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시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산수를 치는 것 아닌가.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一郡의 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
듬직하고 잘 생긴 山 하나
이윽고 완성되는가 했더니
아서라, 畵龍點睛!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로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이 아닌가.
보아라,
거창 오리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넉한 남도의 수묵산수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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