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title05.gif

꼽추 / 김기택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3,872회 작성일 13-05-11 00:27

본문

꼽추 / 김기택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슴등뼈 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