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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시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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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향숙
댓글 1건 조회 324회 작성일 23-02-23 17:35

본문

그럴 때가 있다 / 이정록

 

 

  매끄러운 길인데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

 

  탁자에 놓인 소주잔이

  저 혼자 떨릴 때가 있다.

  총소리 잦아든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노을을 바라보던 젖은 눈망울이

  어린 입술을 깨물며 가슴을 칠 때다.

 

  그럴 때가 있다.

 

  한숨주머니를 터트려버리려고

  가슴을 치다가, 가만 돌주먹을 내려놓는다.

  어딘가에서 사나흘 만에 젖을 빨고

  막 잠이 든 아기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촛불이 깜박,

  까만 심지를 보여줬다가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순간, 아득히 깜깜한 먼 곳에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

 


 


 돌 / 이정록

 

 

  내 서랍은

  당신의 호기심보다 깊지 않아요 

  손끝에 닿지 않는 설렘까지 

  꺼내가지 말아요

 

  내 밥그릇은

  당신의 허기처럼 물방울이 맺혀 있어요

  발끝에 떨어지는 눈물처럼

  마냥 식어가게 두지 말아요

 

  내 우물 속 하늘은

  당신이 높아질수록 깊어지지요

  마냥 밤하늘이 고이게 하지 말아요

  당신의 한숨만 퍼 올리지 않겠어요

 

  나의 봄은

  당신의 입김이 닿을 만큼에서 피어나요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가까이에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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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님의 댓글

정명숙 작성일

무심히 지나가는 그럴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무엇에 놀랐을까?